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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리 대첩

조선 독립전쟁 51년 만주 현장을 가다 1부, 2부, 3부 안동MBC는 창사 46주년 보도특집 3부작 '독립전쟁 51년, 현장을 가다'를 방송했다. 1부 '독립전쟁, 불길을 당기다'는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석주 이상룡, 왕산 허위의 세째형 성산 허겸, 일송 김동삼 선생, 백하 김대락 등 경북 혁신 유림이 항일 무장 투쟁을 위해 전 가문을 이끌고 만주 일대로 간 여정과 만주 일대에서의 독립운동 활동을 다루었다.2부 '대륙에 타오른 전사들'에는 경북 독립운동가의 임시정부 내 활동과 김원봉, 이육사, 김시현 선생 그리고 동북항일연군 3로군 군장겸 총참모장 허형식 장군 등이 상하이와 베이징 등 북만주 일대에서 활동한 내용을 담았다. 안동MBC 창사 46주년 보도특집] 독립전쟁 51년 현장을 가다 제1부 ‘독립전쟁, 불길을 당기다’안동의 혁신 유림 석주 이상룡 선생.. 더보기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대첩과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왕산 허위 가문 청산리전투는 1920년 10월 21일부터 26일 사이에 청산리 일대에서 홍범도(洪範圖)의 연합부대와 김좌진(金佐鎭1889 -1930)의 북로군정서군(北路軍政署軍)이 연합하여 백운평전투(白雲坪戰鬪)를 비롯하여 10여 차례 일본군과 싸운 전투이다. 김좌진은 1915년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참여하여 독립운동 전선에 나섰다. 대한광복회의 목적은 독립전쟁을 통해 조국을 독립시키는 것이었다. 광복회원들은 원수 일본을 몰아내고 국권을 회복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의무이며, 강토회복과 광복은 당연히 도래한다는 신념을 잃지 않았다.대한광복회 부사령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만주로 떠난 김좌진은 1919년 3월 「대한독립선언서」에 대표로 서명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했다. (이상 독립기념관 자료)독립기념관 사료를 살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