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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산 허위

왕산 허위 의병장 112주기 추모식 광복회,민족문제연구소 공동 주최로 열려 대법원장 출신의 의병대장 왕산허위선생 순국112주년 추모식독립운동가 후손들 총집결, 김원웅 광복회장 강연도 열려광복회 구미김천연합지회(지회장 임봉준)와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지회장 이수연) 20일 오후 1시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정신계승 선양을 위해 왕산 허위 선생(대한민국장) 순국 112주년 추모식을 열었다.이날 추모식은 왕산의 장손자 허경성옹과 증손자 허윤씨 임시정부 초대국무령 석주 이상룡 선생(독립장)의 증손자 이항증 선생, 이동일 광복회 경북지부장, 노수문 광복회 대구지부장등 광복회 회원과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 회원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임시정부 애국가 제창과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왕산 허위 선생의 약력 보고, 추모사 낭독, 헌화. 분향, 독립군가의 노래 제창 순으로 진행되었다왕산 허위.. 더보기
구미시 개무덤 소무덤은 성역화 독립투사 기념비는 방치상태 경북 구미출신 독립투사 황진박 선생 기념비는 이정표나 안내판 하나없이 나무와 잡초 덤불 속에 가려진 채로 아무도 찾지 않는 외진곳에 방치되어 있다고 지난 5월 24일 글을 올렸다. 산동초등학교 923번 지방도로 옆 비탈에 있는 독립투사 황진박 선생 기념비는 이정표나 안내판 하나없이 나무와 잡초 덤불 속에 가려진 채로 아무도 찾지 않는 외진곳에 방치되어 있다고 글을 올린지 하루도 안되어 구미시청...게시: 시사 정치 역사 스토리파이 2020년 5월 25일 월요일 글을 올린지 하루만에 구미시 산동면에서 부랴부랴 기념비 주변을 간단하게 제초작업을 했고 황진박 선생 78주기를 맞아 민문연 구미지회에서 조촐하게 추모행사를 열었다. 개무덤 소무덤은 치장하고 박정희 우상화에 1,200억원 쏟아 부은 구미시 독립운동가.. 더보기
제국주의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5적’은 모두 판사 출신 제국주의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5적’은 모두 판사 출신들이었다.1905년 을사년에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대한 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로 체결한 조약으로 우리는 을사늑약이라고 칭한다. 을사오적이란 을사늑약 체결에 찬성했던 학부대신 이완용,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군부대신 이근택,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을 가리키는 대명사가 된 말이다. 그런데 이 을사오적은 모두 판사출신이었다.학부대신 이완용(李完用: 1858.07.17.-1926.02.12.) 전라북도와 평안남도 재판소 판사 출신외부대신 박제순(朴齊純: 1858.12.07.-1916.06.20.) 평리원 재판장서리, 군부대신 이근택(李根澤: 1865.09.30.-1919.12.16.) 평리원 재판장(현재의 대법원장), 내.. 더보기
왕산 허위 일가에서 만주로 망명한 여성들, (허은 여사 회고록에서) 1910년 나라를 잃자 경북의 수많은 애국지사들은 만주 망명길에 올랐다. 그 망명대열에 많은 여인들이 있었다. 석주 이상룡(독립장)의 부인 김우락(애족장) 여사, 며느리 이중숙 여사등 임청각의 여성들, 백하 김대락(애족장), 일송 김동삼(대통령장) 일가의 부인과 며느리 손부 손녀딸 그리고 구미의 왕산 허위(대한민국장) 일가의 여성들이 있었다. 그녀들은 항일투사와 가족을 지키는 것이 곧 나라를 되찾는 길이라 여겼고 이들은 만주에서 서로 혼인 관계를 맺으며 대를 이어 독립운동을 이어갔다.그중 구미 출신 왕산 허위 일가에서 만주로 망명한 여성들의 기록을 찾아 본다. 왕산 허위는 성균관박사, 주차일본공사수원(駐箚日本公使隨員), 중추원의관, 평리원수반판사(平理院首班判事) 등을 거쳐 1904년에는 오늘날의 대법원장.. 더보기
왕산 허위 선생 순국 111 주년 추모식 광복회 김원웅 회장 추도사 왕산 허위 선생 순국 111 주년 추모식 광복회 김원웅 회장 추도사 대일항쟁기에 여느 독립운동가보다도 앞장서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하신 왕산 허위선생님의 순국 111주기를 맞아 경건히 추모의 예를 올린다. 왕산께서는 1855년 이곳 임은동에서 나시어 33세의 적지 않은 나이로 벼슬에 올라 성균관 박사를 거쳐 중추원 의관, 비서원승 등을 지내셨다. 을사늑약이 일어나자, 격문을 살포하고 벼슬에서 물러났으며, 54세의 나이로 서대문형무소 제1호 사형수로 순국하신 선생님께서는 ‘전국 13도 연합의병 창의군’을 이끄셨다. 평생 구국의 일념으로 항일투쟁의 일관된 삶을 사신 분이 바로 왕산이며, 이는 가풍의 영향이 컸다. 애국자 집안에서 애국자가 나고, 친일파의 집안에 친일파가 나는 법이다. 오늘 추모식의 주인공이신 .. 더보기
왕산 허위 선생 순국 111 주년 추모식, 장세용 구미시장 향사 초헌관 맡아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지회장 전병택)는 20일 오후 2시부터 왕산허위선생기념관 옆 묘역에서 '왕산 허위 선생 순국 111주년 추모식'을 열었다. 지난해 110년만에 처음으로 순국일에 추모식을 거행한 민문연 구미지회에서는 이날 왕산 허위 선생의 장손자 허경성(93)씨와 왕산의 손자 며느리 이창숙(88) 여사, 왕산의 증손자 허윤 부부와 왕산가 후손인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의 증손자 이항증, 일창 허발의 손자 허벽, 왕산의 사위 이기영의 손녀 이정재 여사가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을 거행했다.또한 몽양 여운형 선생의 손자 여인성 몽양 여운형 기념사업회 회장, 박희광 독립투사의 아들 박정용씨, 독립투사 최석호 선생의 아들 최창화씨, 광복회 대구지부장 노수문씨등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자리를 빛내주었다.민.. 더보기
구미 확장단지 왕산 허위 선생 기념 왕산광장 왕산루 명칭 경북 구미 임은동 출신 왕산(旺山) 허위(許蔿.대한민국장)는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포문을 연 의병전쟁을 이끈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한일병합(1910)이 되기도 전 부터 성균관 박사, 평리원 수반판사, 재판장(대법원장) 의정부 참찬, 비서원승(국무총리)급의 최고위직에 있으면서도 일제의 침탈에 맞서 싸워왔으며 고종에게 을사오적(乙巳五賊)등 친일파 목을 베라고 상소를 올릴 정도로 나라를 구하려고 온 몸을 던진 분이다. 그리고 그는 결국 매국노 이완용의 체포령에 의해 피체되어 일제에 의해 사형을 당할 정도로 일찌감치 항일전선에 나선 인물이다.건국훈장은 1등급 대한민국장, 2등급 대통령장, 3등급 독립장, 4등급 애국장, 5등급 애족장 그리고 건국포장, 대통령표창이 있다. 대한민국장은 중국인 5명을 제외하면 25.. 더보기
을사오적(乙巳五賊) 다섯 명의 매국노 주살하라고 상소 올린 왕산 허위 선생 을사오적(乙巳五賊)은 1905년 11월 17일 대한제국에서 을사늑약의 체결을 찬성했던 학부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의 다섯 명의 매국노를 일컫는 말이다.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친일파들이 득세하며 민족정신을 훼손하며 온갖 패악 발언을 서슴치 않는일에 개탄하며 을사늑약 전후 당시 상황에 을사오적등 친일파의 목을 베라는 상소를 올린 왕산 허위 선생의 글을 소개한다.성명생몰연대 (당시 나이)당시 직위이후 경력이완용 (李完用)1858년 ~ 1926년 (47세)학부대신후작,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 겸 부의장이근택 (李根澤)1865년 ~ 1919년 (40세)군부대신자작,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이지용 (李址鎔)1870년 ~ 1928년 (57세)내부대신백작..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