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카테고리의 글 목록 (3 Page)
본문 바로가기

역사

민족문제 연구소 구미지회 구미출신 독립투사 유적지 만주답사 기행 중국정부에서 항일영웅열사 300인에 공식 발표할 정도로 대표적인 남한 출신 독립운동가 허형식 장군(동북항일연군 3로군 총참모장 겸 3군장)의 유적지를 찾고 만주 독립운동 사적지를 탐방하는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가 주최한 만주답사 기행은 동북 3성의 헤이룽장성, 지린성 랴오닝성의 주요 도시와 백두산을 거치는 등으로이어지는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하얼빈에서 동북열사기념관과 동북항일연군 박물관을 찾아 잊혀졌던 영웅 허형식 장군의 자취를 찾은 후 하얼빈에서 100km 떨어져 있는 쑤이화시(绥化市)로 이동해 둘째날의 여정의 숙소를 찾았다.하얼빈시도심에 있는 중국은행 건물. 하얼빈 시내 중앙대로의 이름을 조상지 장군을 기념하기 위해 상지대가(尚志大街)로 이름 붙였다.(사진/ⓒ전병택) 백마타고 오는 초인 허형식 장군 .. 더보기
백마타고 오는 초인 허형식 장군 77주년 추모식 중국 흑룡강성 경안현 대라진 현지에서 동북항일연군 3로군 군장 겸 총참모장 허형식 장군(許亨植 1909~1942)이 경호원 왕조경과 진운상을 데리고 소부대 현지지도를 다니던중 1942년 8월 3일 흑룡강성 경안현 청송령 소릉하 계곡에서 일제 관동군과 괴로국인 만주군에 의해 추격을 받아 교전중 33세 나이로 전사한다. 1915년 음력 3월 장군이 6살 때 가문 전체가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만주로 망명하면서 경북 선산군 구미면 임은리를 떠난지 27년 만이다. 허형식 장군보다 8살 어린 같은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 출신 박정희(1017년~1979)는 이 무렵 25살로 일본군이 세운 만주군관학교 예과를 졸업하여 나중 일본군 장교가 된다. 박정희는 왜왕에게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한다며 제국주의 일본에 충성을 맹세하는 내용의.. 더보기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대첩과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왕산 허위 가문 청산리전투는 1920년 10월 21일부터 26일 사이에 청산리 일대에서 홍범도(洪範圖)의 연합부대와 김좌진(金佐鎭1889 -1930)의 북로군정서군(北路軍政署軍)이 연합하여 백운평전투(白雲坪戰鬪)를 비롯하여 10여 차례 일본군과 싸운 전투이다. 김좌진은 1915년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참여하여 독립운동 전선에 나섰다. 대한광복회의 목적은 독립전쟁을 통해 조국을 독립시키는 것이었다. 광복회원들은 원수 일본을 몰아내고 국권을 회복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의무이며, 강토회복과 광복은 당연히 도래한다는 신념을 잃지 않았다.대한광복회 부사령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만주로 떠난 김좌진은 1919년 3월 「대한독립선언서」에 대표로 서명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했다. (이상 독립기념관 자료)독립기념관 사료를 살펴.. 더보기
대구지방보훈청 시산 허필 애국지사 후손에 독립유공자 건국포장 전달 대구지방보훈청(청장 박신한)은 18일 오후 대구 신암동 허창수씨 자택에서 ‘독립유공자 포상 전수식’을 실시했다. 지난 2010년 건국포장 서훈을 받고도 그동안 후손을 찾지 못해 10년 가까이 보훈처에 보관 중이던 시산 허필(許苾) 애국지사의 독립유공 포장이 대구지방보훈청을 통해 허필의 손자 허창수씨에게 전달되었다. 백해숙 대구보훈지청 보훈과장이 허필 애국지사의 손자인 허창수씨에게 건국포장 표창증과 포장을 전달했다. (사진 ⓒ신문식 구미시의원) 허필 애국지사는 한말 의병대장 왕산(旺山) 허위(許蔿)의 사촌 동생으로 허위가 순국한 뒤, 그의 형 성산(性山) 허겸(許兼) 및 그 일족인 범산(凡山) 허형(許蘅) 등과 함께 1915년 경 만주로 이주하였다. 1922년 만주에서 무장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국내에서.. 더보기
만주 최후의 파르티잔 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의 실제 모델 허형식장군 민족시인 이육사, 그의 광야에 나오는 백마타고 오는 초인 육사의 오촌 아저씨 '허형식'을 만난다.이육사를 읽으면 김원봉이 등장하고 허형식으로 찾아보면 북한의 김책, 김일성이 등장한다. 조선혁명군정학교에서, 만주의 동북항일연군으로 양세봉 장군의 부하였던 김일성은 소련땅으로 도망갔으나 허형식은 만주에 끝까지 남아항전하다 이름없는 만주의 골짜기에서 전투중 사망하였다.광야 -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 더보기
구미 출신 의병장 방산 허훈 <국역 방산전집> 을 읽다 경북 구미출신의 13도 창의군 의병 총대장 왕산 허위 의병장은 고종황제 당시 평리원 수반판사, 재판장(대법원장), 의정부 참찬, 비서원승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으며 관직을 버리고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의 포문을 연 의병전쟁에서 최고봉을 장식한 인물이다. 그의 나라사랑 정신은 안중근 의사와 직계제자 대한 광복회 총사령관 박상진 의사에게 전승되었다. 왕산 허위의 큰형 방산 허훈(1836~1907)은 당시 땅 3,000 마지기를 팔아 동생 성산 허겸과 왕산 허위의 의병 창의 군자금으로 보태고 자신도 직접 진보 의병장으로 참전했었다. 3대에 걸처 14명의 독립투사를 배출한 구미 왕산 허위 가문 https://t.co/AVsQp6ONaW pic.twitter.com/Ko5PlMEf2m— NewsPro (@TheN.. 더보기
[경북 구미시] 주인 잃은 독립운동가 건국훈장 후손에게 전달된다. 시산 허필 독립유공 건국포장 훈장 후손인 손자에게 전달된다. 아직 전하지 못한 5,469개의 훈장. 국가보훈처는 훈장 미전수 독립유공자 후손 찾기 캠페인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 명단 확인하기 https://t.co/zvp8sS9RTk ☞ 자세히보기 https://t.co/zvp8sS9RTk pic.twitter.com/crQ7jP7XYQ— 국가보훈처 (@hun2day) 2017년 8월 14일 독립유공자로 포상됐으나 후손이 확인되지 않아 훈장을 전수받지 못한 분의 후손을 찾기 위한 ‘훈장 미전수 독립유공자 후손찾기 사업’을 보훈처에서 진행하고 있다.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 (지회장 전병택 이하 민문연)가 창립 이후 추진해 온 '허형식 장군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 과정에서 장기태 위원장이 허형식 장군의 부친.. 더보기
민족시인 이육사, 독립운동가 외삼촌 일창 허발에게 보낸 친필 휘호 '수부선행' 민족시인 이육사(본명 이원록)가 1930년대 초에 독립운동가인 외삼촌 '일창'(一蒼, 본명 허발)에게 보낸 휘호가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됐다. '수부선행'(水浮船行)이라고 쓴 4자의 한자성어는 이육사가 만주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던 외삼촌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는 내용으로 풀이된다. 이완재 영남대 철학과 명예교수의 해석에 따르면 '수부선행'이라는 글은 "한자성어 그대로 해석하면 '물이(외삼촌을 비롯한 독립자금 후원인들) 배(이육사를 비롯한 독립운동 동지들)를 띄워 가게 한다'는 뜻으로 당시 국내·외적인 정황으로 볼 때 외삼촌이 열심히 번 돈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는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대구매일)민족시인 이육사 친필 휘호 공개 '수부선행'(水浮船行)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