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카테고리의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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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동북항일연군 3로군 군장 겸 총참모장 허형식 장군과 미녀 협객 관려화 허형식은 1909년 경상북도 구미 임은동에서 출생했다. 철길 하나 건너면 일본 왕에게 충성 혈서를 쓰고 일본군 장교가 되어 독립군을 잡으러 다니던 친일파 박정희가 태어난 상모동이다. 박정희는 허형식 보다 8살 어리다. 허형식은 구한말 13도 창의군 총대장으로 일제 통감부를 치기위해 서울진공작전의 선봉에 선 왕산 허위의 당질(사촌형제의 아들)이다.왕산 순국 후 임은 허씨 일족이 만주로 망명을 갈 때 가족과 구미를 떠난 그는 만주에서 자랐고 1930년 하얼빈에서 일본 총영사관을 맨손으로 급습해 1년간 수감됐다. 출소 후 항일전사로 거듭났다. 1935년 동북인민혁명군 단장, 1936년 동북항일연군 정치부 주임, 1939년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군장을 맡으며 만주 항일투쟁을 주도했다. 동북인민혁명군과 이름을 바.. 더보기
민문연 구미지회 두만강 도문시 용정시 윤동주 생가 15만원 탈취기념비 방문 만주 독립운동 사적지를 탐방하는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가 주최한 만주답사 기행은 동북 3성의 헤이룽장성, 지린성 랴오닝성의 주요 도시와 백두산을 오르는 답사.등으로 이어지는 답사 여행의 4박 5일째 여정은 도문시와 봉오동 전투지 용정의 윤동주 생가를 찾는 길이었다.연길을 떠나 도문시로 향하는 길은 G12 고속도로를 이용한 약 50km거리의 한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다.양강도 삼지연군 북동계곡에서 발원 발원하여 북쪽으로 향하던 하던 두만강은 지린성(吉林省) 투먼(圖們)에 이르러 동쪽으로 방향을 튼다. 이 지점에 도문(圖們)시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서 물길을 돌린 두만강은 동해로 곧장 내달린다.연길시 인근에서 부르하통하를 합처진 해란강도 동쪽으로 50여리 물길을 이끌고 난 후 바로 이곳 도문에서 두만강과 만.. 더보기
을사오적(乙巳五賊) 다섯 명의 매국노 주살하라고 상소 올린 왕산 허위 선생 을사오적(乙巳五賊)은 1905년 11월 17일 대한제국에서 을사늑약의 체결을 찬성했던 학부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의 다섯 명의 매국노를 일컫는 말이다.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친일파들이 득세하며 민족정신을 훼손하며 온갖 패악 발언을 서슴치 않는일에 개탄하며 을사늑약 전후 당시 상황에 을사오적등 친일파의 목을 베라는 상소를 올린 왕산 허위 선생의 글을 소개한다.성명생몰연대 (당시 나이)당시 직위이후 경력이완용 (李完用)1858년 ~ 1926년 (47세)학부대신후작,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 겸 부의장이근택 (李根澤)1865년 ~ 1919년 (40세)군부대신자작,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이지용 (李址鎔)1870년 ~ 1928년 (57세)내부대신백작.. 더보기
[ KBS 탐사보도] 독립운동의 보이지 않는 적 밀정 1부 2부 올해 3.1운동·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KBS 탐사보도부가 '독립운동의 보이지 않는 적'이었던 밀정을 추적했다. 지난 8개월 동안의 추적이었다. 일본 외무성과 방위성 기밀문서, 헌정자료실에 보관된 각종 서신, 중국 당국이 생산한 공문서 등 5만 장의 문서를 입수해 분석했다. KBS탐사보도부는 일본과 중국 기밀문서를 분석한 결과 900명 가까운 밀정 혐의자를 확인했고, 이들 밀정의 정보가 우리 독립운동을 분열시키고 무너뜨린 점도 확인했습니다. Instagram에서 이 게시물 보기 #신념 #흔들리지맙시다 #정신차리자 #바른역사알리기 #친일파 #신친일파 #밀정 #우덕순 충격... 지금은 얼마나 많은 우덕순이 있는걸까 윤꼬(@yunjo7602)님의 공유 게시물님, 2019 8월 16 10:05오후 PD.. 더보기
민족문제 연구소 구미지회 구미출신 독립투사 유적지 만주답사 기행 중국정부에서 항일영웅열사 300인에 공식 발표할 정도로 대표적인 남한 출신 독립운동가 허형식 장군(동북항일연군 3로군 총참모장 겸 3군장)의 유적지를 찾고 만주 독립운동 사적지를 탐방하는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가 주최한 만주답사 기행은 동북 3성의 헤이룽장성, 지린성 랴오닝성의 주요 도시와 백두산을 거치는 등으로이어지는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하얼빈에서 동북열사기념관과 동북항일연군 박물관을 찾아 잊혀졌던 영웅 허형식 장군의 자취를 찾은 후 하얼빈에서 100km 떨어져 있는 쑤이화시(绥化市)로 이동해 둘째날의 여정의 숙소를 찾았다.하얼빈시도심에 있는 중국은행 건물. 하얼빈 시내 중앙대로의 이름을 조상지 장군을 기념하기 위해 상지대가(尚志大街)로 이름 붙였다.(사진/ⓒ전병택) 백마타고 오는 초인 허형식 장군 .. 더보기
백마타고 오는 초인 허형식 장군 77주년 추모식 중국 흑룡강성 경안현 대라진 현지에서 동북항일연군 3로군 군장 겸 총참모장 허형식 장군(許亨植 1909~1942)이 경호원 왕조경과 진운상을 데리고 소부대 현지지도를 다니던중 1942년 8월 3일 흑룡강성 경안현 청송령 소릉하 계곡에서 일제 관동군과 괴로국인 만주군에 의해 추격을 받아 교전중 33세 나이로 전사한다. 1915년 음력 3월 장군이 6살 때 가문 전체가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만주로 망명하면서 경북 선산군 구미면 임은리를 떠난지 27년 만이다. 허형식 장군보다 8살 어린 같은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 출신 박정희(1017년~1979)는 이 무렵 25살로 일본군이 세운 만주군관학교 예과를 졸업하여 나중 일본군 장교가 된다. 박정희는 왜왕에게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한다며 제국주의 일본에 충성을 맹세하는 내용의.. 더보기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대첩과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왕산 허위 가문 청산리전투는 1920년 10월 21일부터 26일 사이에 청산리 일대에서 홍범도(洪範圖)의 연합부대와 김좌진(金佐鎭1889 -1930)의 북로군정서군(北路軍政署軍)이 연합하여 백운평전투(白雲坪戰鬪)를 비롯하여 10여 차례 일본군과 싸운 전투이다. 김좌진은 1915년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참여하여 독립운동 전선에 나섰다. 대한광복회의 목적은 독립전쟁을 통해 조국을 독립시키는 것이었다. 광복회원들은 원수 일본을 몰아내고 국권을 회복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의무이며, 강토회복과 광복은 당연히 도래한다는 신념을 잃지 않았다.대한광복회 부사령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만주로 떠난 김좌진은 1919년 3월 「대한독립선언서」에 대표로 서명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했다. (이상 독립기념관 자료)독립기념관 사료를 살펴.. 더보기
대구지방보훈청 시산 허필 애국지사 후손에 독립유공자 건국포장 전달 대구지방보훈청(청장 박신한)은 18일 오후 대구 신암동 허창수씨 자택에서 ‘독립유공자 포상 전수식’을 실시했다. 지난 2010년 건국포장 서훈을 받고도 그동안 후손을 찾지 못해 10년 가까이 보훈처에 보관 중이던 시산 허필(許苾) 애국지사의 독립유공 포장이 대구지방보훈청을 통해 허필의 손자 허창수씨에게 전달되었다. 백해숙 대구보훈지청 보훈과장이 허필 애국지사의 손자인 허창수씨에게 건국포장 표창증과 포장을 전달했다. (사진 ⓒ신문식 구미시의원) 허필 애국지사는 한말 의병대장 왕산(旺山) 허위(許蔿)의 사촌 동생으로 허위가 순국한 뒤, 그의 형 성산(性山) 허겸(許兼) 및 그 일족인 범산(凡山) 허형(許蘅) 등과 함께 1915년 경 만주로 이주하였다. 1922년 만주에서 무장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국내에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