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 제3로군(第三路軍) 총참모장(總參謀長) 허형식(許亨植) 장군 78주기 추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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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 제3로군(第三路軍) 총참모장(總參謀長) 허형식(許亨植) 장군 78주기 추모제

8월 2일 11시 구미 임은동 왕산허위선생기념공원에서 '허형식 장군 78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총참모장 겸 3군 군장 허형식 장군 78주기

허형식 장군 친조카 허창수(許昌洙)씨 분향 및 헌주. 8.15 해방후 만주에서 귀국한 허형식 장군 가족은 한국전쟁으로 인민군과 국군에 의해 희생되기도 했으며 허창수씨는 1960년대 해병대 자원입대로 월남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허창수 씨의 할아버지 시산 허필은 건국포장 서훈을 받은 독립유공자이다. (사진/구미인터넷뉴스) 

78년 만에 고향 구미 임은동에서 처음 열리는 이날 추모제에는 허형식 장군의 친조카 허창수씨와 구미출신으로 실록소설 '허형식 장군' 저자 박도 작가,  허형식 논문을 처음 발표한 동북아역사재단 장세윤 박사,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 선생의 증손자이자 허은 여사의 아들인 안동 임청각의 이항증 선생, 문해청 이육사 기념사업회 공동대표와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 관계자등 시민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 이수연 지회장 인사 장면 (사진구미인터넷뉴스)

구미출신 박 도 '허형식 장군' 소설작가 추도사 장면,  박 도 작가는  ‘허형식 생가’는 이미 헐린지 오래고 그곳은 벚꽃하우스라는 원룸 건물이 들어서 있고 구미시 어느 곳에도 33세의 짧은 인생을 오로지 항일무장투쟁에 헌신했던 ‘체 게바라 급(級) 혁명가’ 허형식 장군을 추모하는 공간이 없다며 비통한 현실을 통탄했다.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 장기태 서훈추진위원장 허형식 장군 공적보고 장면  (사진구미인터넷뉴스)

허형식 장군 논문을 한국에서 최초로 발표한 동북아역사재단 장세윤 박사 내빈 인사(사진=구미인터넷뉴스)

허형식 장군 78주기 추모제에 참석자 단체사진 (사진/구미인터넷뉴스)

21대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송영길 의원, 김태년 원내대표실 기획실장 허소, 민족문제연구소, 한솔메디텍 장기태 대표, 허형식장군 기념사업회 준비위 등에서 허 장군을 추모하는 화환을 보냈다.

허형식 장군은 경북 구미의 독립운동 명문가 왕산 허위(대한민국장가문의 범산 허형의 동생인 시산(是山허필(건국포장)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3도 창의군 총대장 왕산 허위 의병대장 순국 후 임은 허씨 가문 전체가 만주로 집단 망명길에 함께 따라가 만주에서 자랐다.


1930년 하얼빈에서 일본 총영사관 습격사건 이후 허형식은 북만에서 항일 명장으로 떠오르게 된다.

1934 6 28일 주하유격대를 동북반일유격대 합동지대로 재편성하게 되자 제3단 정치위원에 임명됐으며, 그 해 가을에 제1대대 대대장이 됐다.


1935 1월 합동유격대가 동북인민혁명군 제3군 제1사로 편성되자 제2(연대)장이 됐으며 유수하자(柳樹河子) 전투, 소량수하자(小亮水河子) 전투 등 수많은 전투에 참가했다.


일본군과의 수많은 전투에서 승전고를 올리며 항일연군의 최고위급 지도자로 우뚝 선 그는 1939 4월에는 동북항일연군 3로군 총참모장 겸 제3군장에 임명됐으며, 1940년 봄 제3로군 제12지대 정치위원이 되었고 9월 풍락진(豊樂進)전투에 참전했으며 특히 그는 동북항일연군 3로군 기병부대를 이끌 당시 백마를 타고 지휘한 것으로 유명하다.


1941년 일본의 토벌에 맞서 항일연군 제9·12지대에서 유격활동을 계속하던 중 이듬해인 1942 8 3일 흑룡강성 경안현 청송령 소릉하 계곡에서 전사했다.


당시 그는 동북항일연군의 유일한 남한 출신 지휘관으로 300여 회 전투를 통해 27개 도시를 점령하고 일본군과 경찰 1557명을 사살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저항시인 이육사(19041944)의 시 `광야'에 등장하는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은 실제 만주에서 백마를 타고 무장 항일투쟁을 벌였던 허형식(許亨植) 장군이라고 학계에서는 주장하고 있다.허형식 장군은 육사 어머니 허길의 사촌 동생으로 만주벌판에서 항일투쟁을 하며 육사를 만났다고 한다.

이육사의 어머니 허길은 허형식의 사촌 누이다, 이육사는 만주 전구에서 허형식을 만났다.


중국정부는 허 장군을 항일영웅열사 300인에 포함하여 그를 기리고 있으며 한국사학회장을 지낸 바 있는 강만길 전 고려대 교수는 만약 허형식 장군이 희생되지 않았다면이 분은 북녘 아니면 남녘에서 정권을 잡았거나 통일정부를 세웠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이준식 독립기념관장은 개인적으로 꼭 포상해야 할 사람은 바로 허형식이라고 꼽은 적이 있다.

지난해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 장기태 서훈추진위원장이 주축이 되어 허형식 장군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신청했으며 보훈처에서 심사가 진행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