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부동 전적기념관 야외 전시 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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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다부동 전적기념관 야외 전시 장비

다부동 전적기념관은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에 있는 전쟁 기념관으로 호국의 고장 칠곡에 6·25 전쟁 전적지를 개발함으로써 호국 영령을 추모하고 안보 의식을 고취하여 전후 세대에 대한 전쟁의 산교육장으로 활용하고자 설립하였다.



다부동 지구 전적 기념비 탑



순국용사 충혼비


구국경찰 충혼비



8인치 자주포(8 inches self-propelled howitzer)


M48A2C Tank


M60A3 탱크 자체 이동을 하면서 전천후 주야간 목표물 주공격 탱크로 70년대 초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미육군

주력 전차였다.


M113 장갑차 (M113 CARRIER) 속도 64km/h, 엔진마력 215마력, 항속거리 480km, 중량 10.67ton, 승무원 11명



M113 장갑차 승무원 탑승 공간



CM 6614 장갑차, 속도 100km/h, 엔진마력 145마력, 항송거리 700km, 중량 8.4ton, 승무원 11명



F-86F(SABRE) 전투기, 기관총 6문, 폭탄 2,000 LBS, 로켓트 8발을 장착하며 6·25전쟁 당시 MIG-15 격추기로 명성을 얻었던 전투기이다.

T-37C 항공기는 미국 CESSNA사가 개발한 쌍발엔진의 기초훈련기로서 제트기의 조종과 계기형태 및 야간 비행술을 교육시키도록 고안된 최초의 제트 훈련기이다. 이곳에 전시된 #68-0930은 1966년 브라질에서 생산된 기체로서 1983년에 도입하여 20년간 10,500시간을 비행하여 전투조종사 양성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으며 국산 훈련기인 KT-1(웅비) 항공기에 그 임무를 인계하고 2002년 6월 30일 퇴역하였다.


37mm 직사포 - 6·25 당시 미군이 사용하던 화기로서 적의 진지 및 차량, 장갑차, 병력 등이 집결되어 있는 지역을 사격하여 치명타를 입혔던 아군의 주력화기로 유명했던 야포였다. 중량은 411kg, 사정거리 9,500M, 발사속도(25발/분)



57mm 직사포,  6·25전쟁 이전부터 우리 국군의 유일한 포병화기였으며, 북한이 전차를 앞세우고 남침했을 때, 우리 국군은 이 포로 적에게 대항하여 큰 피해를 주었다. 발사속도는 분당 20발이다.



40mm 대공포 1962년 4월 미국에서 생산되어 1983년 5월 한국군에 도입되었으며, 2006년 2월 현역에서 퇴역한 대공포이다.  발사속도는 분당 60~120발이다.



122mm 곡사포, 소련제 무기로 6.25 당시 북한 보병사단 곡사포 연대에서 사용했던 화기로 아군의 155mm 야포와 대등한 성능을 갖고 있으며 과거 소련과 위성국가에서 보유하고 있던 기본 야전 포병 화기다, 중량은 3,450kg으로 사정거리는 11,800m 발사속도는 분당 5~6발로 인민군에게 노획한 곡사포다



6·25 당시 북한은 소련으로부터 이 포를 대량으로 공급받아 남침시 사용하였는데, 1951년초 경기도 용문산 전투에서 우리 국군 제6사단이 북한군을 물리치고 노획하였다. 발사속도는 분당 16발이다.


75mm 곡사포, 6·25전쟁 당시 다부동전투에서 사용된 야포였다



1957년도 미국 Western Electric사에서 제작된 유도탄으로 우리 국군에는 1960년에 도입되었으며, 적 비행물체 파괴 및 중요목표물에 대한 지대지 임무를 수행하는 미사일이다. 유효사거리는 지대공 155km, 지대지 183km 





다부동 전투(多富洞戰鬪)는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꼽히는 전투로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에서 전투를 벌인 끝에 대한민국 국군이 북한군의 대공세를 저지시키고 대구로 진출하려던 세를 꺾었다.


전쟁이 아직 끝난것도 아닌 휴전 상태고 한국전쟁 종전을 외치고 있지만 아직 미완성 상태다. 특히 다부동 전투는 55일간이나 계속되었으며 북한군 2만 4천여 명과 국군 1만여 명이 죽거나 다치는 등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낸 곳이다.


살아 남은자는 영웅이 되고 죽은자는 말이 없다. 무명용사들의 피흘림으로 지켜낸 승리를 한명의 전쟁 영웅 만들기를 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