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대한민국 인물의 고향 구미 (왕산 허위, 장택상, 박정희, 김재규)
본문 바로가기

역사

근현대사 대한민국 인물의 고향 구미 (왕산 허위, 장택상, 박정희, 김재규)

오늘의 구미는 인구 42만 명이 넘는 우리나라 최대의 내륙 산업도시이지만, 100년 전에는 선산군 구미면으로 인구 수천명의 안팎의 작은 시골 마을 이었다. 

금오산 주위로 산들이 둘러 싸고 낙동강을 낀 해평 평야와 지산들을 끼고 있는 과거 선산군은 이중환의 택리지에도 ‘조선의 인재 절반이 영남에서 나왔고, 영남 인재의 절반이 나왔다’ 라고 할 정도로 많은 인물이 나왔다. 

한국 성리학의 대가 야은 길재로 부터 김숙자, 김종직, 사육신 단계 하위지, 생육신 경은 이맹전이 선산군 출신이다. 특히 선산 이문리와 노문리는 장원급제자가 많이 나왔다고 해서 '장원방' 이라고 불린다.

또한 구미는 근현대사에서 대한민국 역사를 뒤흔든 대표적 인물의 고향이기도 하다. 

한말 대법원장 출신의 13도 창의군 군사장 왕산 허위(許蔿, 1855~1908) 의병대장 가문과 영남 제1의 대부호 만석꾼 장승원(1853~1917)의 세째 아들로 태어나 해방 후 수도경찰총장, 국무총리까지 지낸 장택상(1893 ~ 1969)집안, 그리고 이들 집안의 소작을 부치던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군 중위를 지내며 해방 후 5.16 군사 쿠테타를 일으켜 대통령을 지낸 박정희(1917년~ 1979) 집안이 반경 1.3KM 내에 있다. 그리고 유신의 심장을 쏜 김재규(1926 ~ 1980)장군의 생가는 약 18km 떨어진 선산읍에 있으며 모두 선산군 출신이다.

왕산 허위 가문과 장택상의 아버지 장승원 집안은 서로 통혼을 하던 사이였으며 장승원이 당시 의정부 참찬 자리에 있던 왕산 허위에게 경상도 관찰사 자리를 천거해달라고 거금 20만원(현시가 50억)을 가져와 벼슬을 사려고 했다. 

이때 왕산의 제자 박상진(1884∼1921)은 그자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관찰사 자리 꿰 찰것이니 후일 독립 군자금이 필요할 때 그 돈을 내도록 하라고 스승에게 조언하여 돌려 보낸다.

하지만 장승원은 군자금을 대는 것을 거부하고 결국 대한광복회 총사령관 박상진 의사의 부하 채기중, 강순필, 이형락에 의해 처단된다. 

이후 아들 장택상은 독립투사들을 자기 아버지를 죽인 원수라고 하며 보복했다. 백범 김구 검거를 시도했고 약산 김원봉을 모욕했으며 몽양 여운형 암살 배후로 지탄받았다. 

평리원 서리재판장(대법원장), 의정부 참찬, 비서원승등 최고위직을 지내며 고종의 측근으로 을사오적의 목을 베어 백성들의 원한을 풀어 달라고 상소와 재소를 올린 후 왕산 허위는 1907년 을사늑약 이후  1만여명의 13도 창의군을 결성해 군사장으로 일제 통감부를 부수기 위해 서울진공작전을 펼친다. 

대한제국 최초의 판사시험에 합격하고도 식민지 관리가 되기를 거부하고 대한광복회를 설립하여 무장독립투쟁에 나선 왕산 허위 선생의 직계제자 박상진 의사는 의형제를 맺은 김좌진에게  군자금 6만원(현시가 약 10억 3천만원)을 지원하여 만주 부사령관으로 파견한다. 청산리 대첩의 시작이었다.

1962년 대구달성 공원에서 거행된 왕산허위선생 순국기념비 제막식에 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가 참석했다. (사진/국가기록원)

1962년 대구달성 공원 왕산허위선생 순국기념비 제막식 박정희 의장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사진/국가기록원)

독립운동가들에게 훈장이 수여되기 시작한것은 5.16 쿠테타 이후 부터다. 쿠테타로 정권을 찬탈했을 때 정통성 문제가 크게 대두 된 것을 상쇄하기 위해 독립운동가들을 박정희가 찾기 시작할 때 맨 먼저 대한민국의 상징적 독립운동가 의병대장 왕산 허위 선생 기념비 제막식에 참석한 것이다.


1962년 대구달성 공원 왕산허위선생 순국기념비 제막식에서 박정희와 악수를 하고 있는 분이 왕산 허위 선생의 장손자 허경성 어른으로 보인다.(사진/국가기록원)

1962년 대구달성 공원 왕산허위선생 순국기념비 제막식, 왕산 허위선생의 따님과 며느리 강신복 여사등 왕산 후손들과 박정희 의장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국가기록원)

박정희가 왕산허위선생순국기념비 제막식 참석 후 그가 사망할 때 까지 18년간 왕산 허위 선생에 대한 예우는 잊어버렸다. 만약 김구 선생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다면 지금 구미는 왕산 허위 선생과 그 가문의 14분의 독립운동가에 대한 성역화 사업이 크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2020년 오늘날에도 왕산 허위 선생과 도산서원 병산서원 원장을 지낸 방산 허훈등 독립운동가 선양 사업은 구미에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구미시 오태동 장택상 생가. 장승원이 대한광복회 독립투사들에게 총살 당한 곳이기도 하다. (사진/경북문화신문)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생가 1960년대 모습 (사진/노컷뉴스)

박성빈(1871~1938)과 백남의(1872~1949) 부부의 막내 아들 박정희가 태어난 생가는 빈농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준다. 100여년 전 당시로는 며느리를 볼 정도의 나이 45세 임신한 박정희 어머니는 아이를 지울려고 간장약을 한사발이나 들이키고 높은데서 구르는등 애를 썼음에도 박정희는 태어났다. 

가난한 박정희 집안은 영남 부호 장승원 집안의 땅을 소작하면서 생계를 이어갔고 박정희 형제들이 한창 자랄때 당시 의병전쟁의 선봉장인 왕산 허위 가문이 임은동에 자리잡고 있었고 장승원 집안도 굽신거리는 영남유림의 명문대가(名門大家)였다. 왕산 허위 선생의 임은동 생가는 99칸의 대저택이었다.

임은동 허씨가문 사람들은 모두 만주로 망명가서 3대에 걸처 독립운동을 이어가는 가운데 세월이 많이 지난 후 빈농의 소작인 막내아들 박정희는 일본 관동군의 장교에서 5.16 쿠테타로 국가최고회의 의장에서 대통령이 되었고 장택상은 해방 후 수도경찰총장, 국무총리 그리고 4선의 국회의원을 지냈다.

24살 이나 어린 감히 얼굴조차 마주 보지 못할 천한 소작농의 아들이 대통령이 되자 장택상 입장에서는 경천동지할 일 이었다. 이후 장택상은 야당 투사로 돌변해 반 박정희 운동에 앞장섰고 사석에서는 '박정희 군' 혹은 '박정희 씨'로 부르며 그에 대한 독설을 자주했다. 

이것은 전해들은 박정희는 분노가 머리 끝까지 치솟았고 장택상에 대한 탄압은 시작되고 그가 6대 국회의원에 낙마하고 출국금지 대상에 오르자 세상이 변한 것을 깨달은 장택상이 박정희에게 '박정희 각하 전상서' 라는 항복 편지를 보내 겨우 신병 치료차 미국으로 갈 수 있었다.

역사는 묘한 인과관계를 가진다. 2차 서울진공작전을 준비하던 왕산 허위 의병장은 이완용의 체포 명령에 의해 1908년 6월 피체되어 평리원 재판을 거치는 동안 왕산의 인품에 매료된 일본 헌병대장 아키시와 대신들의 탄원에도 불구하고 이토 히로부미는 왕산의 교수형을 재가해 그해 10월 21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한다. 

그리고 안중근은 왕산 허위가 순국한지 꼭 1년 후 우덕순 유동하와 함께 1909년 10월 21일 아침 가슴에 벨기에제 브라우닝 M1900 권총을 품고 블라디보스토크 역을 출발해 하얼빈으로 향했다. 그리고 10월 26일 전 내각총리대신, 전 조선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사살한다.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는 거사 후 5차 공판에서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장군은 "우리 이천만 동포에게 허위와 같은 진충갈력의 기상이 있었던들 오늘같은 국욕은 받지 않았을것이다" 라고 말했다. 

이토 히로부미가 사살당하고 꼭 70년이 되던 1979년 10월26일 둘도 없는 고향 선후배였던 선산군 상모리 태생의 박정희는 이문리 태생의 김재규에게 총살당한다. 

지금 구미에는 이 네 사람의 역사가 남아 있다. 임은동에는 13도 창의군 총대장 왕산 허위 선생을 기념하는 왕산 허위선생 기념관과 생가터에는 기념공원이 있으며 오태동에는 지금은 식당으로 사용되는 장택상의 생가가 있고 선산읍 이문리에는 그동안 흉가처럼 버려졌던 김재규의 생가가 유족들에 의해 복원되었다. 

상모동에는 박정희 생가와 인근에 1,000억대의 대규모 새마을 테마파크, 개점을 앞 둔 200억 짜리 유물관등 박정희 타운이 조성되어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3대 항일 가문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왕산 허위 선생 가문의 독립운동가 선양 사업은 아직도 구미에서 홀대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1,000억원이 넘는 혈세를 쏟아 부은 박정희 타운은 찾는 이가 없어 여전히 썰렁하다. 그런 가운데 구미시는 오는 9월에 200억 짜리 박정희 유물관 개관을 준비중이다. 컨텐츠 부족으로 벌써부터 시민사회단체의 따가운 질책을 받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