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대 넘어 방치 상태 구미 산동면 독립투사 황진박 선생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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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홀대 넘어 방치 상태 구미 산동면 독립투사 황진박 선생 기념비

구미지역 현충시설 현황을 살펴 본 결과 거의 다 찾아 보았는데 산동면에 황진박 선생 기념비가 있다 해서 찾아 보았다. 

1

위선생 유허

비석

경북 구미시 임은동 산7 왕산허위선생 기념관 내

2

애국지사박희광선생동상

동상

경북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 도립공원 입구

3

황진박선생 기념비

비석

경북 구미시 산동면 인덕리 861

4

충혼탑(선산읍)

경북 구미시 선산읍 동부 산1-2 비봉산

5

선산출신독립유공자공적비

비석

경북 구미시 선산읍 동부리 선산충혼탑 옆

6

독립지사 남상순기념비

비석

경북 구미시 선산읍 무을면 무동2리

7

호국용사기림터

조형물

경북 구미시 임수동 동락공원 내

8

백은최재화교사기념비

비석

경북 구미시 해평면 산양동 마을앞도로변

9

왕산 허위선생 기념관

기념관

경북 구미시 임은동 산 7

국가 보훈처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경북 선산출신으로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1년 6월의 옥고를 치르신  황진박(黃鎭璞, 1888.4.27~1942.5.27, 1990년 애족장)선생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기념비이다. 

경북 구미시 산동면 인덕리 산동초등학교 옆 923번 지방도로 야산 중턱에 산동면 (일제 창지개명전 지명 선산군 대동면) 출신 독립운동가의 비석이 무성한 잡초속에 방치되어 있다. (사진/전병택)

구미 성수동(일제 당시 지명) 출신의 황진박(黃鎭璞, 1888~1942) 선생은 격렬한 민족주의자로 1910년 조선이 일본에 병합되자 책장을 박차고 일어나 약장사로 변장하여 뜻있는 동지를 찾아 각처를 두루 다녔다.

황진박 선생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상경하여 3.1운동에 참가할 정도로 의기가 대단했으나 평화적 시위만으로는 독립을 이룰 수 없음을 확인하고 귀향하였다. 고향 선산으로 돌아온 그는 장진홍,이내성,박관영 등 동지들과 손잡고 다 같이 결사대원이 되어 무장 독립 운동에 나섰다.

1920년대 초 구미 선산지역의 독립운동 이끌던 황진박은 장진홍의 대구 조선은행폭탄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루었고, 해방 직전까지 연금과 투옥을 거듭하다가 1942년 해방을 보지 못한 채 사망하였다.

산동초등학교 923번 지방도로 옆 비탈에 있는 독립투사 황진박 선생 기념비는 이정표나 안내판 하나없이 나무와 잡초 덤불 속에 가려진 채로 아무도 찾지 않는 외진곳에 방치되어 있다.

독립투사 황진박 선생 기념비에 올라가는 계단은 수십년 동안 방치되어 거의 뭉개진 상태로 풀더미를 헤치고 올라가야 한다. 923번 지방도로 어느쪽에서도 독립투사 황진박 선생 기념비 안내판이나 이정표는 없었다.

황진박 선생 기념비는 나무와 잡초들에 둘러싸여 인도쪽에서는 찾아 보기 힘든 상태다.

경북 구미시 산동면 산 28-1 번지에 있는 황진박 선생 기념비, 1967년 9월 30일 월정 황진박 선생 기념사업회에서 건립했다.

국가보훈처지정 현충시설이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이 시설은 독립운동을 전개한 황진박 선생의 공적을 추모하고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민족정기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항상 주변을 정화하고 경관의 오염됨이 없도록 우리 모두 함께 관리 보존하자는 안내판이 있으나 실상은 온갖 잡초속에 내팽겨처진 채 방치되어 있다.

3.1 혁명 100주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지난해 부터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독립운동가 발굴, 선양사업에 대규모 프로젝트를 가동하여 방송등을 통해 전국적으로 다양한 특집행사를 진행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대한민국 역사의 주류로 만들겠다고 말하면서 전국 각 지자체에서도 대통령 뜻에 부응하고 위대한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자기 고향의 소중한 정신적 유산으로 만드는 작업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유독 구미시는 독립운동가들을 위한 선양사업에 큰 마찰음을 내면서 전국적인 망신을 당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구미시 산동면 일부 주민단체에서 산동면 지역정서상 독립운동가를 선양하는 전통 누각명칭과 광장이름을 지우라는 서명운동을 전개했으며 대한민국의 상징적인 독립운동가문인 왕산 허위 선생 가문의 14분의 독립운동가 기념 조형물도 설치하지 말라는 일도 벌였으며 구미시도 이에 동조하고 있는 실정이다.

3대에 걸처 14인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대한민국 5대 항일 가문중 가장 돋보이는 구미의 왕산허위 선생 가문은 아직도 구미에서는 홀대를 받고 있다.


구미시 장천면과 산동면 해평면을 잇는 923번 지방도로 인근에는 의우총(소무덤) 의구총(개무덤) 안내판이 큼지막하게 설치되어 있고 개와 소의 무덤이 도로변에 조성되어 있다.

구미시 산동면 인덕리 경운대 근처에 있는 의우총이다. 호랑이가 소와 싸우다가 주인에게 덤벼들자 소가 호랑이를 떠받아 주인 목숨을 살렸다는 일종의 설화를 바탕으로 이렇게 만든것이다.

의우와 의구 이야기는 중국 고사로 부터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비슷한 내용으로 각 지방마다 떠 돈 전설따라 삼천리 같은 이야기를 기록에 남겨 그럴싸하게 만든것이다. 산동면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역사적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923번 지방도로를 따라 도리사 입구를 지나 낙산리 고분을 조금 지나면 의구총이 나온다. 의구에 대한 이야기도 중국에서부터 조선시대까지 거의 비슷한 내용의 의로운 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내용도 한결같이 똑 같다.

모두 주인이 술에 취해 잠들었는데 불이 나자 개가 강물에 물을 적셔 주인을 구했다는 이야기인데 사실 그 정도 불길이면 개가 아무리 물을 적셔와 발버둥 처도 불길에 개주인이 불타 죽고 말지 개가 지처 죽었다는 천편일률적인 전설을 가지고 개무덤을 만든 내용들은 사실 그 시대의 우매한 백성들을 다스리는 통치 방식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앞선다.

낙산리 개무덤이다. 구미지역 어느 독립운동가의 묘역도 이정도로 잘 가꾸어 놓은 곳은 단 한곳도 없다.

그리고 의구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설화와 같은 것이다. 불에 타 죽을 뻔한 주인을 구한 비슷한 개 이야기는 전국적으로 많다.

의구설화의 대표격은 전국 22곳에 널리 분포된 진화주구(화재을 진압하고 주인을 구한다는)형식이다. 불을 끄고 주인을 살려냈다는 거의 똑같은 의구 설화는 이미 중국에서 널리 구전되어 온 이야기들이다. 한결같이 불 끄고 주인을 구한 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제39대 엄이웅(1993년 3월 31일-1995년 6월 30일) 선산군수 재직시에 의구총과 의우총 정비사업을 실시했다. 지자체장의 정신 상태에 따라 구전설화가 기록되고 이것이 하나의 진짜 이야기 인양 가공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진실인양 믿도록 할 수 있다. 

하나의 구전설화 이야기인 개무덤 소무덤은 이정표와 안내판까지 만들어 거창하게 민속자료라고 등재해놓고 알리고 있으며 '산동의우문화축제' 이름의 소 제사에 2019년도 까지 구미시에서 720만원의 보조금을 해마다 지원했다.

2019년도 의우위령문화제 지방보조사업비로 보조금 집행내역 합계 720만원이 집행되었다.

그동안 수천만원의 구미시 예산으로 개와 소 무덤을 위한 거창한 행사까지 치르고 있다. 소위 의우 위령문화제, 혹은 의구위령행사다.

그동안 구미시는 박정희 우상화 작업의 일환으로 1천억 대의 새마을 테마공원을 만들고 200억대의 박정희 유물관을 곧 개관한다.

그러나 구미시는 정작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재산과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의 기념비 조차 제대로 정비 관리를 하지 못하고 있는 어처구니 없는 실정이다.


아무도 찾지 않는 외진 산 비탈에 세워진 독립투사 황진박 선생 기념비를 10호 근린 공원인 물빛공원으로 이전 설치하여 산동주민들과 학생들에게 산동 출신의 독립운동가를 소개하는 산 교육의 현장으로 만드는 것이 어떨까?

그런데 알고보니 구미시 산동면도 일제가 우리 문화를 말살하고 민족혼을 지우기 위해 원래 지명을 산동면으로 바꾼 창지개명의 잔재다. 원래 이름은 선산군 대동면이었다. (부산기록원에 자료 있음)

구미 산동면은 1913년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토지조사 때 바꾼 일제가 만든 지명... 원래는 선산군 대동면이다.  대동면 큰 대자를 두 줄로 선을 긋고 지우고 산동으로 바꾸었다.

지역구 시,도의원과 국회의원 그리고 산동면장과 구미시 담당 공무원들이 현장에 나가서 직접 살펴보길 권한다.

치욕의 일제 창지개명의 잔재 산동면 이름도 이대로 계속 방치해야 하는지 다른 대책을 강구해야 하는지는 관계 공무원들과 지자체장의 의식수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