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세상(KBS1) 독립운동의 숨은 영웅들, 한의사 (강우규,허발,신홍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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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다큐세상(KBS1) 독립운동의 숨은 영웅들, 한의사 (강우규,허발,신홍균)

베일에 싸인 독립운동가 한의사, 1945년 광복에 이르기까지 일제강점기 35년 동안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독립운동가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국가보훈처가 수집한 독립유공자공훈록에 기록되어 있는 수는 1월 현재 1,5825명. 그러나 무수히 많은 이들이 무명으로, 우리의 기억에서 잊힌 채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탄압과 차별의 대상이 된 한의학계 역시 항일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자신의 자리에서 뜨거운 독립운동을 펼치게 된다.
세상이 몰랐던 한의사들의 독립운동을 통해 우리 역사 속 숨은 이야기를 1월 31일 밤 11시 40분 KBS 1TV 다큐세상에서 전한다. 바로 강우규(대한민국장), 신홍균, 일창 허발 애국지사다.
일제, 한의학을 표적으로 정하다 : 일제가 국권을 강탈하고 우리 민족을 무력으로 다스리기 시작한 무단통치 경제적 수탈은 물론 민족문화를 말살하기 위한 전방위적인 통치 정책을 펼친다. 전통의학인 한의학 역시 탄압 대상이었다.
결국 일제에 저항하고 전통의학을 지키기 위한 한의사들의 독립운동에 불씨가 당겨졌다. 먼저 한의학 사수에 나선 한의사들은 전국적인 조직망을 결성하고 학술 교류와 후진양성에 힘쓰며 한의학의 명맥을 이어나갔다.


의열무장투쟁의 선봉장이 된 한의사 : 1919년 9월 서울역 일대를 뒤흔든 폭발음이 터졌다. 제3대 조선총독을 향해 폭탄을 던진 사건으로 주역은 강우규였다.
당시 65세의 나이로 무장투쟁의 선봉장이 그는 일제와 세상을 향해 조선독립의 염원을 각인시켰다. 고향과 만주에서 한의사로 활동하며 주변의 신망을 얻은 그는 신흥동 한인촌을 건설하고 광동학교를 세워 교육에 모든 것을 바쳤다.
당시 평균 수명이 44세였던 시절 65세의 노인이지만 누구보다 뜨거운 마음을 품고 결행한 폭탄 의거는 청년세대들에게 본보기가 되었고, 의열무장투쟁의 기폭제가 됐다.

서울역 광장에 있는 강우규 의사 동상, 서울역을 지나가면서도 제대로 된 참배를 못했다, 송구스런 마음이다. (사진/ 국가보훈처)

현재(2020년 01월)까지 전체 독립유공자는 15,825명 이다. 대한민국장 서훈 받은 분은 30명으로 전체의 0.19%이며 대통령장은 92명으로 전체의 0.58%, 독립장은 818명으로 전체의 5.19%, 애국장은 4338명으로 전체의 27.41%, 애족장은 5,763명으로 전체의 36.42%, 건국포장은 1,317 1,317명으로 전체의 8.32%, 대통령 표창은 3,463명으로 21,88%.

강우규 의사는 1등급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서훈받은 분이면서도 대중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독립유공자 훈격별 서훈 상황 (2020년 1월 31일 현재)



독립군에도 군의관이 있었다 : 한국 독립군 3대 대첩, 청산리·봉오동·대전자령, 일본군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둔 전투로 손꼽힌다.

독립군 3대 대첩 도표 (자료/장호철 제공)

전투에서 필수적인 존재인 군의관. 지금까지 독립운동 연구에서 군의관의 존재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1933년 대전자령 전투에서 군의관으로 참전한 한의사가 있었다.
바로 신홍균이다. 신홍균 후손에게 남겨진 유서 속 단서를 따라 치열했던 전투 현장을 탐사하며 군의관의 활약으로 승리를 거두게 된 숨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독립군은 일본군 부대가 지나가는 길목인 대전자령에서 매복 작전을 펼쳤다. 그러나 악천후로 인해 독립군에게 위기 상황이 발생했다. 이때 군의관이 기지를 발휘해 그 위기를 모면, 일본군을 격파하고 막대한 노획품으로 전투력을 높이는 전과를 올렸다.

청산리 대첩, 봉오동 전투와 함께 '독립군 3대 대첩'으로 불리는 '대전자령 전투'에서 군의관으로 참전한 한의사 신홍균

독립운동의 거점, 한의원 : 저항 시인 이육사가 고마움을 마음을 담아 쓴 글씨 ‘수부선행’, 독립투사를 지원하고 군자금을 조달해준 자신의 외삼촌, 허발에게 남긴 증표였다.


대구광역시에 위치한 국립묘지인 국립신암선열공원(國立新巖先烈公圓)내에 일창 허발의 묘소가 있다. 그의 묘비는 안중근의 5촌 조카 안춘생이 썼다. 안춘생은 독립군 출신으로 육사교장을 역임했다.

이육사의 집안은 13도 창의군 총대장 왕산 허위 선생 일가와 혼인관계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었으며, 육사의 어머니가 일창 허발의 여동생인 허길(許佶)이다. 일창 허발은 왕산 허위의 4촌 범산 허형의 둘째 아들이다.

경북 구미 임은동 출신의 일창 허발은 이육사의 큰 외삼촌이며 작은 외삼촌 일헌 허규도 독립운동으로 20년 가까이 옥고를 치렀으며 해방 후 입법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통일 되기 전에는 서훈 신청도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겨 아직까지 독립유공자 미서훈 상태다.


왕산 허위 의병대장의 순국 후 가족을 따라 구미 임은동을 떠나 1915년 만주로 망명한 허은여사는 1922년 석주의 손자 이병화와 결혼한 뒤 끝없이 찾아오는 독립군을 수발하는 ‘독립군의 어머니’ 역할을 했다. 허은 여사의 아버지가 바로 일창 허발 애국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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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시인 이육사가 외삼촌 일창 허발 선생에게 독립군자금을 모아 준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쓴 휘호 #수부선행 KBS 1TV 다큐세상에서 방영 일창 허발은 13도 창의군 총대장 왕산 허위의 종조카로 14인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구미 임은동 방산 허훈 왕산 허위 가문 출신이다. 그의 부친은 범산 허형이며 바로 이육사의 어머니 허길은 그의 누이며 임청각의 3대 종부 허은 여사의 아버지가 바로 일창 허발이다. 실제 이육사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허발의 동생 일헌 허규로 일제 강점기 당시 독립운동으로 무려 20여년 가까이 옥고를 치루었다. 몇시간 인터뷰하고 촬영한 내용이 8분여 정도 밖에 안나와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이제 이분들의 독립운동 역사가 서서히 세상에 드러나는 계기가 될것이다. 일창 허발 선생의 서훈 추진하느라 많은 고생을 한 장기태 위원장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일창한약방 #한의사 #독립운동가 #일창 #허발 #허길 #허규 #허은 #구미 #임은동 #왕산허위 #왕산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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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장으로 이름 높은 왕산 허위를 도와 독립운동에 뛰어든 일창 허발 그는 국내외를 오가며 독립자금 조달의 역할을 맡았다. 명망있는 한의사이기도 했던 허발은 만주에서 자신의 호를 딴 한의원을 운영 이곳에 이시영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이 드나들며 연락 거점 역할을 했다.
또한 한의원의 수익금은 동지들의 활동비, 생활비로 지원했다. 한의사들의 독립운동은 한의학에 원동력이 됐다. 비가 온 뒤 땅이 굳듯이 한의학은 보다 탄탄한 내공으로 지금까지 발전해 왔다. 새로운 독립운동에 대한 시각으로 더 많은 역사의 숨은 영웅들을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