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산 허위 선생 순국 111주년 박원순 서울시장 추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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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정치 사회

왕산 허위 선생 순국 111주년 박원순 서울시장 추모사

 

왕산 허위 선생 순국 111주년 추모사

 

19081021. 우리민족은 일제에 의해 위대한 지도자 한분을 잃었습니다.

바로, 한성감옥(서대문형무소)에서 첫 번째로 사형집행을 당한 왕산 허위선생입니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 했던 선생의 순국에 주권을 잃은 우리 민족은 목 놓아 울지도 못했습니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책이 아닌 칼을 든 선비가 되어야 했던 선생의 전 생애는 애국을 향한 대장정이었습니다.

1855년 경북구미의 명망있는 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선생은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에 항거하기 위해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민족이 처한 깜깜한 현실에 잠시만 눈감으면, 어쩌면 수많은 학자와 관료가 그랬던 것처럼 편하게 살수도 있었을 겁니다. 어쩌면 더 높은 지위와 더 많은 부를 거머쥘 수도 있었을 겁니다.

성균관 박사, 중추원 의관, 평리원 수반판사, 평리원 재판장과 의정부 참찬과 같이 수많은 관직을 역임한 선생에게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일신의 편함이 아닌 항일 투쟁이었습니다.

전국 의병 연합체인 ‘13도 창의군을 결성하여 서울 진공작전을 이끈 선생의 항일 투쟁은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선생의 숭고한 항일투쟁이 있었기에 우리 역사는 3.1운동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품을 수 있었습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책이 아닌 칼을 든 선비가 되어야만 했던 선생의 의기에 진심어린 존경을 표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너무나 부끄럽습니다선생께 역사를 빚진 후손으로서 너무나 죄송합니다.

한 집안에서 14명이나 되는 독립운동가를 배출할 만큼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신 선생과 선생 가족의 후손들은 아직도 대한민국에 돌아오지 못한 체 중국과 러시아 등지에 뿔뿔이 흩어져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 온 생애를 불태운 선생의 영전 앞에서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다짐합니다.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선생이 남긴 애국과 정의의 마음이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 널리 퍼질 수 있도록 기억하고 기리겠습니다.

 

다시 한 번, 한없는 존경과 추모의 마음을 담아 선생의 평안한 안식을 기원합니다.

아울러 오랜 시간 고통과 시련의 세월을 감내해 왔을 후손들께

감사와 사죄의 마음을 전합니다.

 

서울특별시장 박원순

신문식 구미시의원 대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