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 구미 출신 13도 창의군 총대장 왕산 허위 선생 제 111 주기 추모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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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정치 사회

[알림] 구미 출신 13도 창의군 총대장 왕산 허위 선생 제 111 주기 추모행사

<왕산 허위 선생 제111주기 추모행사>

민족문제연구소는 13도 창의군 총대장 왕산 허위 선생의 순국 제111주기 추모식을 아래와 같이 거행하오니 부디 참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래

때 : 2019년 10월 20일(일) 오후 2시
곳 : 경북 구미시 임은동 왕산기념관 내 왕산 허위 선생 묘소




<왕산 허위 선생 연보>


1855년 4월 2일 구미시 임은동에서 청추헌 허조(許祚)의 넷째 아들로 출생하였습니다.

1896년 3월 김산(김천)에서 의병을 규합 성주, 충청도 진천 등지에서 활동 중 고종의 명에 따라 의병을 자진 해산 후 청송에서 학문에 전념하였습니다.

1899년 3월 벼슬길에 나서 5년간 성균관 박사, 중추원 의관, 평리원 재판장, 의정부 참찬, 비서원 승을 역임하고 종2품 가선대부에 이르렀습니다.

1905년 외교활동을 위한 비밀 독일방문계획 실패, 일본의 만행규탄 격문 살포로 체포 4개월 간 투옥, 벼슬을 그만두고 김천 지례로 은거하였습니다.

1907년 경기도에서 의병을 모아 포천, 양주, 철원, 장단, 연천 등지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면서 해산 당한 강화진의 관군까지 흡수하였고, 전국 13도 연합의병 창의군을 결성하였습니다.

※ 총대장 이인영, 군사장 허위(경기대장 겸임), 전라 문태수, 충청 이강년, 황해 권중희, 강원 민긍호, 평안 방인관, 경상 신돌석, 함경 정봉준 등과 양주에 집결한 13도 연합의병 창의군은 서울 일제통감부 공략을 결정, 각 의병대가 분산 출발, 왕산선생은 300여명의 선발대를 지휘 동대문 밖 30리 지점까지 이르렀으나, 후원군의 도착 지연과 일본군의 기습으로 연천으로 패퇴되었습니다.

이때 부친의 사망으로 귀향한 총대장 이인영이 왕산선생에게 총대장 역할을 당부하였습니다.

서울진공작전에 실패한 의병들은 임진강 유역에 재집결하고 왕산선생이 연합 의병의 총대장이 되어 활동, 이때 총리대신 이완용은 사람을 보내 관찰사나 내부대신의 자리를 주겠다고 유혹하였으나 이를 꾸짖어 돌려 보냈습니다.

1908년 5월 24일 아침 연천에서 일본헌병부대의 기습을 받아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투옥, 같은 해 9월 27일 서대문형무소에서 1호 사형수로 교수형에 처해 순국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헌을 기리기 위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왕산로는 그의 호를 따서 지은 것이다.





구미의 위대한 의병장 왕산 허위 선생 순국 110년 만에 첫 추모식. 그동안 구미에서 얼마나 홀대받았는지 무려 110년만에 처음으로 추모식이 지난해 열렸다.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를 창립준비하던 중 그 사실을 뒤늦게 알고 니난해 10월 21일 왕산 허위 선생의 친손자 허경성씨와 손자며느리 이창숙 여사 그리고 일창 허벌의 손자 허벽씨등 왕산가 후손들과 뜻있는 구미시민들이 110년 만에 처음으로 추모식을 거행하였다.


왕산 허위가문은 3대에 걸처 14분의 독립투사를 배출한 대한민국 3대항일가문이다.

구미시가 왕산 허위 선생과 그 가문의 독립운동 정신을 기려 왕산광장과 왕산루를 조성하고 가문의 14분의 독립투사 조형물 설치를 하기로 하였으나 신임 시장이 광장과 전통누각 명칭을 동네이름으로 변경하고 14인의 독립투사 조형물을 옮기려 하는 이 시점에 열리는 왕산 선생의 111 주년 추모식은 더욱 의미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