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문연 구미지회 두만강 도문시 용정시 윤동주 생가 15만원 탈취기념비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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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민문연 구미지회 두만강 도문시 용정시 윤동주 생가 15만원 탈취기념비 방문

만주 독립운동 사적지를 탐방하는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가 주최한 <2019년 8/1~7, 6박7일> 만주답사 기행은 동북 3성의 헤이룽장성, 지린성 랴오닝성의 주요 도시와 백두산을 오르는 답사.

<하얼빈시-경안시-상지시-목단강시-도문시-연길시-용정-백두산-통화시-심양시>등으로 이어지는 답사 여행의 4박 5일째 여정은 도문시와 봉오동 전투지 용정의 윤동주 생가를 찾는 길이었다.

연길을 떠나 도문시로 향하는 길은 G12 고속도로를 이용한 약 50km거리의 한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다.

양강도 삼지연군 북동계곡에서 발원 발원하여 북쪽으로 향하던 하던 두만강은 지린성(吉林省) 투먼(圖們)에 이르러 동쪽으로 방향을 튼다. 이 지점에 도문(圖們)시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서 물길을 돌린 두만강은 동해로 곧장 내달린다.

연길시 인근에서 부르하통하를 합처진 해란강도 동쪽으로 50여리 물길을 이끌고 난 후 바로 이곳 도문에서 두만강과 만난다. 도문시는 해란강과 두만강이 합해지는 곳에 자리잡은 도시다.

연길을 떠나 도문으로 나가는 G12 고속공로 나들목 (사진 ⓒ전병택)

연길과 도문으로 가는 고속도로 표지판에는 한글이 병행되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진 ⓒ전병택)

봉오동 전투지 인근 이정표에는 연길까지는 39km, 안도까지는 113km 거리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도문 투먼(圖們)시 총인구는 약 13만명으로 조선족한족만족회족몽골족 등 10여개 민족이 거주하고 있다그중 조선족이 총인구의 55%를 점하고 조선족을 위주로 하는 다민족집거지로 되고 있다(사진 ⓒ전병택)

왕산 허위 의병장의 친손자인 허경성(93)옹 이 1945년 광복을 맞은 후 도문시를 통해 귀국을 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도문시에서 귀국길 짐 일부를 도난 당해 귀중한 가족의 사진등 기록물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중국과 북한의 접경지인 두만강 강변에는 <전방은 조선이다, 비법월경을 엄금한다!> 라는 간판이 곳곳에 걸려 있다.

북한쪽 산중턱을 가르는 도로를 지나면 온성군으로 가는 길이다. 그 밑으로 철도길이 있는데 구글 지도로 확인하니 모퉁이를 돌면 풍리역이 나온다.

눈물젖은 두만강 "김정구 선생의 '눈물젖은 두만강'이 이곳 도문(투먼)에서 지어졌다 한다. 

1930년대 중반의 어느 여름날. 만주 일대에 순회공연을 하고 온 극단 '예원좌' 일행은 두만강 유역 투먼의 여관에 투숙하고 있었다. 극단 단원 중에 음악 청년 이시우가 있었다. 

이시우는 갑자기 옆 방에서 들려 오는 젊은 여인의 통곡을 듣고 밤새 뒤척이다 다음날 여관주인에게 사연을 캐물었다. 사연인즉, 독립군에 가담한 남편이 일본군에 잡혀 숨졌다는 소식을 듣고 그처럼 슬피 울었다는 것이었다. 

다음 날 이시우는 젖은 눈으로 두만강가로 내려가 악상을 그려나갔다. 이 노래를 소녀 배우 장월성이 무대 막간에서 불러 박수갈채를 받았다. 서울로 돌아온 이시우는 작곡가 박시춘에게 보여 악보를 다듬게 했고, 1938년 김정구는 이 노래를 OK레코드에 취입했다. 

사시사철 관광객이 붐빈다는 투먼-남양(북한)을 잇는 도문대교를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받는다 큰 관광수입원인데 마침 보름전 누군가가 도문대교에서 무슨일을 저질렀는지 한국인은 입장을 불허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두만강 크루즈 유람선을 탔다. 해란강과 만나는 곳까지 배를 타고 둘러보니 우거진 풀섶과 잡목 사이에 북한의 위장 초소가 숨어 있다. 조심스럽게 사진을 몇장 찍어본다. 

도문에서는 두만강을 만강 도문강 도망강 똥물강 4가지로 부른다고 한다, 도문강은 중국에서 부르는 이름이고 도망강은 탈북자 때문에 그리고 똥물강은 하류로 갈수록 강물이 더럽다고 해서 그리 부른다고 한다. 말 그대로 흙탕물이다.

도문시에서 벗어나 봉오동 전투지로 향하는 길에 다시 만난 G12 고속공로 입구, 중국 군인들을 태운 군용차량들이 들어서고 있다.

도문 고속공로 입구에서 왕칭(汪淸) 방향 이정표를 따라 1.3㎞ 가면 도로 오른쪽에 조선족 마을 수남촌(水南村) 나온다. 

수남촌(水南村) 길을 따라 곧장 올라가면 3㎞ 지점에 도문시 수도국 봉오동 저수지가 나온는데 이 저수지 위 10 km 떨어진 산악지대가 바로 봉오동 전투지이다. 봉오동 전투 영화나 한국 역사에서는 홍범도 장군만을 기억하고 있지만 최진동을 비롯한 홍범도의 ‘동지’들을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도문에서 다시 연변으로 돌아와 점심식사를 마친 후 답사팀은 용정으로 향한다. 용정에 들어서면 한글 간판이 즐비하여 중국같지 않은 기분에 휩싸인다. 

용정시내에 있는 간도 일본 영사관 자리

용정시를 관통해 흐르는 해란강

용정시 조선족 학교인 용정 고급중학교. 용정시는 중국 지린 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있는 도시로 인구는 26만여 명이고, 전체 인구 중 한민족 비율이 67%에 이른다. 그만큼 한글 간판도 많고 길에 나서면 왠지 친근한 분위기가 감돈다.

윤동주 시인의 생가가 있는 명동촌으로 가는길에는 곳곳에 한글 간판이 늘어서 있으며 한옥 건물도 자주 눈에 뛴다.

도문시와 연길시 그리고 용정시에서 명동촌으로 가는 길 곳곳에 보이는 '촌 우두머리' '향 우두머리'등 악세력 척결 구호판이 곳곳에 눈에 띈다.

명동촌 명동학교 터

윤동주 생가에서 만주답사기행 팀 단체 촬영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모티브가 된 15만원 탈취 사건 기념비 (사진 ⓒ전병택)

윤동주 생가가 있는 명동촌에서 용정시내로 5분 정도 거리에 철혈광복단이 독립운동에 사용할 무기 구입을 위해 조선총독부 자금 당시 돈 15만원을 탈취한 자리에 ‘15만원 탈취사건 유적지’ 비가 세워져 있다(사진 ⓒ전병택)

1920년대에 연변을 발칵 뒤집은 전대미문의 사건인 ‘15만원 탈취사건’은 당시 무장독립조직인 “북로군정서” 소속 철혈광복단 단원 6명이 독립군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참에 조선총독부가 조선은행 회령지점에서 룡정출장소로 “반일투쟁탄압경비”조로 15만원을 수송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되면서, 이들은 1920년 1월4일 오후 8시 용정의 동량어구에 매복하고 있다가 현금수송마차를 습격하여 5명의 무장 호송대를 사살하고 지폐 15만원을 탈취하는데 성공한다. 

당시 최신 소총 한정이 30원이였다고 하니 15만원은 독립군 5000명을 단번에 중무장시킬수 있을 정도의 거금이었는데

이들은 돈을 가지고 시베리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무기구입 원정길에 나선다. 철혈광복단은 체코군단의 총과 무기를 구매하는 계약 직전단계까지 갔다. 

그런데 여기서 엄인섭이라는 뜻밖의 인물과 부닥치게 된다. 무기구입을 위해 내세웠던 엄인섭은 일제의 앞잡이였는데, 그의 밀고로 4명이 체포되어 결국 사형을 당하게 된다. 당시 15만원 탈취 사건을 모티브로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제작되었다. (출처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72254)

용정에서 이도백하 <얼다오바이허(二道白河镇)> 까지 2시간 30분( 실제는 3시간 넘게 걸렸다) 154 km 거리의 산악도로를 타고 넘는다. 바이허(白河)라는 지명은 백두산 물줄기라는 뜻이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한국 답사객들이 상해와 만주 등지를 부쩍 많이 찾으면서 중국 정부의 견제가 심해졌다. 도문시 인근 봉오동 전투지는 봉오동 저수지와 수남촌만 둘러보고 백두산으로 넘어가는 길의 청산리 대첩 승리지도 찾기가 힘든 실정이다. 

동북항일연군 3로군 군장 겸 항련 총참모장 허형식 장군의 유적을 답사하기 위해 들른 하얼빈의 동북항일연군 기념관과 동북열사 박물관에서도 중국 공안들의 감시가 삼엄했었다. 

용정에서 백두산 얼다오바이허(二道白河镇)시 까지 가는 산악도로, 백두산 높이의 산맥을 넘어가는 험준한 도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