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방보훈청 시산 허필 애국지사 후손에 독립유공자 건국포장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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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대구지방보훈청 시산 허필 애국지사 후손에 독립유공자 건국포장 전달

대구지방보훈청(청장 박신한)18일 오후 대구 신암동 허창수씨 자택에서 독립유공자 포상 전수식을 실시했다.

 

지난 2010년 건국포장 서훈을 받고도 그동안 후손을 찾지 못해 10년 가까이 보훈처에 보관 중이던 시산 허필(許苾) 애국지사의 독립유공 포장이 대구지방보훈청을 통해 허필의 손자 허창수씨에게 전달되었다.

 


백해숙 대구보훈지청 보훈과장이 허필 애국지사의 손자인 허창수씨에게 건국포장 표창증과 포장을 전달했다. (사진 ⓒ신문식 구미시의원)


허필 애국지사는 한말 의병대장 왕산(旺山) 허위(許蔿)의 사촌 동생으로 허위가 순국한 뒤, 그의 형 성산(性山) 허겸(許兼) 및 그 일족인 범산(凡山) 허형(許蘅) 등과 함께 1915년 경 만주로 이주하였다.

 

1922년 만주에서 무장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국내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동대문 경찰서에 구금되었다. 허필은 일경(日警)의 신문 (訊問)에 단 한마디도 자백하지 않고 감금된 그날부터 일체의 음식을 거부하는 단식(斷食)을 결행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이 같은 공훈을 기려 2010년 건국포장을 추서했지만 그동안 후손을 찾지 못해 전수가 이뤄지지 못했다.

 

서훈을 받았으나 후손이 확인되지 않아 미 전수 되었던 허필 애국지사의 건국포장은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 장기태 위원장이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 3로군(第三路軍) 총참모장(總參謀長) 허형식(許亨植) 장군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아직 그 포장이 후손인 허창수씨 에게 전달되지 않은 사실을 확인하고 보훈처에 관련 증빙서류를 제출 확인하는 등 노력 끝에 건국포장 전수가 이뤄졌다.


시산 허필(1855~1932)은 한학과 의학에 조예가 있어 만주에서 한약방을 열어 일가를 부양하고 독립운동을 도왔다. 허필의 둘째아들 허형식(1909~1942)은 독립운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1936년 동북항일연군 제3군 제1사 정치부 주임이 되어 일본군과 격전을 벌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 1937년 4월에는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총참모장에 임명되어 1941년까지 제3로군을 지휘하며 독립투쟁을 벌였다. 1942년 8월 만주국 토벌대에 포위되어 장렬하게 전사했다.



시산 허필 애국지사의 후손인 허창수씨에게 전달된 건국포장

 


전병택 민문연 구미지회장, 허창수씨, 장기태 위원장, 신문식 구미시의원 


전수식에는 허필 애국지사의 손자인 허창수씨와 백해숙 대구보훈지청 보훈과장, 정경진 보훈선양팀 직원, 민족문제 연구소 전병택 구미지회장, 장기태 위원장, 신문식 구미시의원, 이상원, 정민혜 뉴스민 기자 등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