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 최후의 파르티잔 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의 실제 모델 허형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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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만주 최후의 파르티잔 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의 실제 모델 허형식장군

민족시인 이육사, 그의 광야에 나오는 백마타고 오는 초인 육사의 오촌 아저씨 '허형식'을 만난다.

이육사를 읽으면 김원봉이 등장하고 허형식으로 찾아보면  북한의 김책, 김일성이 등장한다. 조선혁명군정학교에서, 만주의 동북항일연군으로 양세봉 장군의 부하였던 김일성은 소련땅으로 도망갔으나 허형식은 만주에 끝까지 남아항전하다 이름없는 만주의 골짜기에서 전투중 사망하였다.

광야 -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육사는 자신보다 다섯살 어린 오촌 아저씨 허형식을 만주에서 직접 만난 후 만주에서 영웅적인 항일활동을 하고 있는 허형식을 그려 광야의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불렀다고 전해진다. 


허형식은 이육사 어머니 허길의 사촌동생이다. 이육사가 나이가 다섯살 많았지만 허형식을 존경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백마타고 오는 초인의 실제 모델이 바로 허형식이라고 학계는 주장한다.



민족부흥을 위해 영웅열사의 계보를 이으며 白山黑水 (백두산과 흑룡강) 사이에서 수많은 전투를 벌인 영웅 - 허형식 이라고 중국방송이 소개하는 장면에서 그동안 국내에 알려지지 않았던 허형식 장군의 30대 무렵 동북항일연군 3로군 군장겸 총참모장 시절 사진이 공개되었다.

그동안 국내에 알려진 학창시절 모자 쓴 허형식 장군의 사진이 중국방송 화면에 소개되고 있다.

동북항일연군 3로군 군장겸 총참모장 시절의 사진으로 보인다. 뒤 배경 사진은 아마 동북항일연군 3로군 부대원들인듯

중국 방송에 나온 허형식 장군 소개를 뉴스프로 안희정 중국어 담당이 번역해 준 내용이다.

민족 부흥을 위해_영웅 열사편 

오늘의 민족 부흥을 위해_영웅 열사편은 허형식 열사를 회고해보겠습니다.

허형식, 조선족, 
1909년 조선 경상북도 선산군 출생 
1930년 (공산당) 입당, 얼마 후 하얼빈 반일대시위에 참여하여 감옥에 수감
1931년 ‘9•18’사변 후 조직의 도움을 받아 석방된 후, 빈현, 탕위엔, 주허 등 지역에서 

대중의 힘을 모아 항일유격대 조직

1934년, 부대를 인솔해 주허 항일유격구 창설
1936년, 동계 반토벌작전 참여
1939년, 자신의 부대를 이끌어 송넌평원에서 항일유격전을 전개, 란시 펑러진 등 전투에서 승리
1940년, 부대가 심각한 타격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가며 소규모 부대로 전투를 지속
1942년 8월, 적군을 맞아 2시간 동안 강력하게 항거했으나 결국 중과부적으로 장렬히 사망, 항년 33세

일본군과 항전하면서 말을 타고 이동하는 동북항일연군 (사진/중국사이트)

일본군과 일본 괴뢰국 관동군 그리고 괴로국이 만든 간도특설대와 항전하면서 이동 행진중인 동북항일연군  (사진/중국사이트)




황교안이 찾아간 백선엽이 맹활약한 간도특설부대는 일본 제국의 괴뢰국인 만주국이 동북항일연군, 팔로군 등 항일 조직을 공격하기 위해 1938년 조선인 중심으로 조직하여 1939년부터 본격적인 작전을 수행했다.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존속한 800~900여 명 규모의 대대급 부대였다. 간도특설대는 1939년부터 1943년까지 허형식 장군의 동북항일연군 등 다양한 항일조직과 5년간 전투를 벌였다. 

收藏在哈尔滨烈士纪念馆中 许亨植用过的驳壳枪 眼镜、马鞍

하얼빈 동북열사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허형식 장군의 모제르 권총과 안경, 말안장. 허형식 장군은 백마를 타고 다녔다고 전해진다.


동북항일연군 조직에서도 허형식 장군은 3로군 영장 총참모장이다. 제1영의 영장은 김일성, 제3영의 영장은 바로 허형식이다. 

허형식 장군 아래의 정치담당 부영장이 바로 김책인데 김책은 북한에서조차 김책시라는 지명으로 만들 만큼 유명한 인물이다. 그 김책이 허형식 휘하에 있었다.  



성균관 대학교 경제학과 김태동 명예교수가 책 출간을 축하하는 글을 트윗에 올렸다.


구미 출신 박도 작가에 의해 실록소설 '허형식 장군'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지회장 전병택) 장기태 서훈 추진위원장이 대한제국 당시 의병대장으로 맹활약했던 왕산(旺山) 허위(許蔿) 선생의 5촌 조카 허형식(1909~1942) 장군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국가보훈처에 접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