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시] 주인 잃은 독립운동가 건국훈장 후손에게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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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경북 구미시] 주인 잃은 독립운동가 건국훈장 후손에게 전달된다.

시산 허필 독립유공 건국포장 훈장 후손인 손자에게 전달된다.



독립유공자로 포상됐으나 후손이 확인되지 않아 훈장을 전수받지 못한 분의 후손을 찾기 위한 ‘훈장 미전수 독립유공자 후손찾기 사업’을 보훈처에서 진행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 (지회장 전병택 이하 민문연)가 창립 이후 추진해 온 '허형식 장군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 과정에서 장기태 위원장이 허형식 장군의 부친인 시산 허필 애국지사의 독립유공자 포상 사실을 확인하고 아직 그 훈장이 후손인 허창수씨에게 전달되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


보훈처에 등재되어 있는 시산 허필의 독립유공자 공훈록

그동안 후손을 찾지못해 10년 가까이 보훈처에 보관중이던 시산 허필 애국지사의 독립유공 훈장이  6월 5일 보훈처 의결을 통과해서 대구보훈청을 통해 허필(許苾)의 손자 허창수씨에게 전달된다. 

아울러 허필의 손자인 허창수씨에게는 이제 매달 보훈급여가 지급되며 생활조정수당, 교육지원, 취업지원, 의료지원, 대부지원, 양로지원, 양육지원, 수송시설지원, 주택우선공급, 생업지원, 장래지원, 국립묘지 안장 등의 지원도 받을 수 있다.

허필은 가족들과 함께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항전하다가 1932년에 서거했다. 그의 묘는 하얼빈에 있다. 유족이 국립묘지로 이장을 원할 경우 이 또한 지원받을 수 있다.

보훈처 독립유공자공훈록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허필은 한말 의병대장 왕산(旺山) 허위(許蔿) 의 동생으로 허위가 순국한 뒤, 그의 형 성산(性山) 허겸(許兼) 및 그 일족인 범산(凡山) 허형(許蘅) 등과 함께 1915년 경 만주로 이주하였다. 

1922년 만주에서 무장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국내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동대문 경찰서에 구금되었다. 허필은 일경(警)의 신문 (訊問)에 단 한마디도 자백하지 않고 감금된 그날부터 일체의 음식을 거부하는 단식(斷食)을 결행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허필은 한학과 한방에 상당한 조예가 있어 한약방을 열어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하는 데 한몫을 했다. 허필의 조카가 일창 허발이며 그도 만주에 일창한약방을 열어 독립군의 연락처로 사용하였으며 독립군자금을 모아 조카인 이육사 시인의 항일 투쟁을 돕기도했다. 

민족시인 이육사(본명 이원록)가 1930년대 초에 독립운동가인 외삼촌 ‘일창'(一蒼, 본명 허발)에게 보낸 휘호가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됐다. ‘수부선행'(水浮船行)이라고 쓴 4자의 한자성어는 이육사가 만주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던 외삼촌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는 내용으로 풀이된다.


장기태 위원장이 일창 허발 애국지사의 서훈을 신청했다.

왕산 허위 선생의 사촌 동생인 허필(許苾)의 아들이 바로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 제3로군(第三路軍) 총참모장(總參謀長) 허형식(許亨植) 장군 이다. 그는 1909년 경북 선산(현 구미시)에서 태어났다. 1915년 부친을 따라 만주로 이주한 그는 요령성 개원현에 살다가 1929년 하얼빈으로 이사하였다. 

허형식 장군은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항일영웅열사 300명중 한명이다. 바로 경북 구미출신 허필의 아들이다. 그러나 구미에는 허형식 장군 비석 조차 하나 없는 상태 그의 생가 임은동 264번지는 다세대 주택이 자리잡고 있다.  

이육사(1904~1944)의 시 ‘광야’의 마지막 구절이다. 그는 1942년 중국 베이징 일본총영사관 지하감옥에서 온갖 고문을 견디며 이 시를 썼다.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은 누구일까. 통상 학교에서는 ‘해방된 민족적 자아’로 가르쳐 왔다. 그런데  최근 그 초인이 가상이 아니라 실제 모델을 기반으로 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바로 ‘만주 최후의 파르티잔’으로 불린 허형식(1909~1942)이다. “북만주에서 희생되지 않았다면 북녘 아니면 남녘에서 정권을 잡았거나 통일정부를 세웠을 것”(역사학자 강만길)이라는 그는 누구인가. 


허형식과 김일성은 대등한 위치에 있었다. 역사학자(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는 만일 그때 허형식 장군이 북만주에서 희생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북녘 아니면 남녘에서 정권을 잡았거나 통일정부를 세웠을 거라고 높이 평가했다. 


경북 구미의 독립운동사는 이제껏 역사에 묻혀져 있었다. 왕산가문이 대한민국 3대 항일 가문이라지만 구미에는 자그만한 왕산 기념관 하나만 있을 뿐이고 구미 출신 57명이 넘는 독립운동가들이 있지만 생가가 복원된 곳은 단 한군데도 없다. 

특히 범산가는 남북통일되기 전에는 서훈 신청도 하지말라는 유언으로 범산 허형과 일창 허발 일헌 허규등은 그 대단한 독립운동에도 불구하고 모두 오랜 세월동안 잊혀진 상태다. 다만 지난해 범산 허형의 딸인 임청각 3대종부 허은이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을 뿐이다.

6개월 여 기간동안 허형식 장군과 일창 허발 선생의 독립유공자 서훈 신청을 준비한 장기태 위원장은 "왕산가의 독립운동사는 찾을수록 그 끝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깊고도 넓다. 이제 시작인거 같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그렇다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