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시인 이육사, 독립운동가인 외삼촌 일창 허발에게 보낸 휘호 수부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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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민족시인 이육사, 독립운동가인 외삼촌 일창 허발에게 보낸 휘호 수부선행

민족시인 이육사(본명 이원록)가 1930년대 초에 독립운동가인 외삼촌 '일창'(一蒼, 본명 허발)에게 보낸 휘호가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됐다. '수부선행'(水浮船行)이라고 쓴 4자의 한자성어는 이육사가 만주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던 외삼촌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는 내용으로 풀이된다. 

이완재 영남대 철학과 명예교수의 해석에 따르면 '수부선행'이라는 글은 "한자성어 그대로 해석하면 '물이(외삼촌을 비롯한 독립자금 후원인들) 배(이육사를 비롯한 독립운동 동지들)를 띄워 가게 한다'는 뜻으로 당시 국내·외적인 정황으로 볼 때 외삼촌이 열심히 번 돈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는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대구매일)

독립운동가 이육사 시인의 종손자인 이승환 씨가 3일 경산시 자택에 보관 중인 이육사 사자성어 휘호를 세상에 처음 공개했다. 성일권 기자 (사진/매일신문)


범산 허형의 셋째딸이자 일창 허발의 누이 허길은 진성이씨 이황의 13대손 이가호와 결혼했다. 허길은 이육사의 어머니이다. 그리고 허발의 딸 허은(許銀)은 석주 이상룡의 손자 며느리가 된다. 

석주 이상룡의 아들 동구 이준형 독립운동가의 유고집 '동구유고' 국역판에는 이준형 독립운동가의 둘째딸과 왕산 허위의 넷째 아들 허국이 만주에서 결혼하는 과정의 내용도 실려있다. 허발 가문과 이상룡 가문은 겹사돈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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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조                                                        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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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훈  허신  허겸              허위(호-왕산)             허형(1843~1922)                  허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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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숙          허선    허학  허영 허준 허국    허민 허발 허규  허길(딸)+이가호  허보 허형식 허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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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경성,도성,순성                   허은             ㅣ

                                                                                     l

 허종                                         ┏------------------------------------------------┓

                                               이원기  이원록(이육사)  이원일  이원조  이원창  이원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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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옥비(외동딸)


이육사의 외조부 범산(凡山) 허형은 의병장이며, 13도 창의군(十三道倡義軍)의 군사장으로 활약한 왕산(旺山) 허위와는 사촌이다. 구미 왕산가는 방산 허훈, 성산 허겸, 범산 허형, 시산 허필 등 사위, 외척들과 임은허씨 가문 전체가 3대에 걸쳐 항일 운동을 벌인 대한민국의 최고 독립운동가문이다.

일창 허발 선생 (1872∼1955) 묘역의 비: 대구에 있는 국립신암선열공원은 한국의 독립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선열들의 넋을 기리는 공원으로 국내 유일의 애국지사 묘지공원이다. 오십두분의 독립유공자가 안장되어있는데 네분이 미서훈자로 남아있다. 특히 일창 허발은 조국이 통일 되기 전에는 유공자 서훈 신청을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겨 서훈 신청도 하지 않았다. (사진 ⓒ김성대)

일창 허발의 비문을 쓴 안춘생은 안중근 의사의 5촌 조카로 안중근의 하얼빈 거사 이후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만주로 망명해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36년 중국군에 배속되어 임시정부를 지원하며 항일운동을 시작했다. 안춘생 준장은 9대 육군사관학교 교장(51년 10월~52년 11월)을 역임했으며 광복군이나 독립운동의 전력이 있는 육사 교장이기도 했다. (사진 ⓒ김성대)

립운동가 일창 허발 의사는 이육사 시인의 큰 외삼촌이다. 허발 의사가 민족시인 이육사의 외삼촌이라는 사실은 묘소 앞 비석에도 기록되어 있다. 바로 경북 구미 임은동이 이육사의 외가다.

육사는 친가쪽으로는 퇴계의 선비 정신과 외가쪽으로는 범산의 투사의 피를 물려받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기록에는 특히 작은 외삼촌인 일헌 허규가 이육사 시인의 형제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독립운동으로 20년간 옥살이를 했던 일창의 동생 일헌 허규(이육사의 작은 외삼촌)는 서훈의 모든 조건을 채우고도 남았지만 유언으로 “통일이 되기 전엔 서훈 신청을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최근 대한제국 당시 의병대장으로 맹활약했던 왕산(旺山) 허위(許蔿) 선생의 5촌 조카 허형식 장군의 독립유공자 서훈 신청을 주도한 장기태 위원장이 일창 허발의 손자 허벽씨에게서 허락을 받아 일창의 독립유공자 서훈도 준비중이며 허규의 서훈 준비를 위해 아들 허술씨와 접촉중이다.


왕산·석주·육사 집안이 혼맥으로 대한민국 최고 독립운동 명문가를 이룬 사실을 널리 알린다면 그동안 묻혀 왔던 공업도시 구미의 이미지를 한국 최고의 독립운동 가문을 배출한 고장으로 재평가받게 될 것이다.  


일창 허발의 손자 허벽씨가 왕산 순국 110년만에 처음 열린 추도식 후 구미 왕산 기념관에  허발 선생의 한약의서 '방약합편' 등 유품을 기증했다고 하는데 그책과 유품이 안보인다고 하여 민문연 구미지회 회원들이 기념관을 방문해 각종 기록 서적을 찾아보았으나 발견하지 못했다. 

방약합편을 찾기 위해 몇개월 수소문하던중 이번 4월8일 100년만에 처음 열린 임은동 독립만세운동에 허벽씨가 서울에서 내려왔을 때 그 유품이 다시 나타나서 찾게 되었다.

만주로 망명 후 독립군 연락처이자 군자금 조달처였던 일창한약방을 경영하며 일창 허발 선생이 남긴 한약의서 '방약합편'을 다시 찾게 되었다. (사진/ ⓒ박찬문)

본 방약합편은 일창(발)선생이 일제의 탄압을 피하여 만주 지방에서 항일 투쟁시 일창한약방을 경영하시며 응용하여 쓰시던 책이며 한약방에서 나온 수입금은 왕산 가족의 생계도 부담하시며 군자금 마련에도 도움을 주셨습니다. 해방 후 6.25 동란시에도 대소가 식솔들의 생활에도 도움을 주었습니다. 돌아가실때까지 귀중히 여기시던 책입니다. <기증자 손자 허벽> (사진/ ⓒ박찬문)

왕산기념관에 기증했었던 일창 허발선생의 유품 : 평소 탐독하시던 만해 선생 문집, 퇴계 선생, 문집 1집, 퇴계선생 문집 2집, 보인사 규범 1권(창기인 허위 외 38명), 일창(발) 유언 유명지서 1권 (78세에 씀), 대한제국 대 황제 즉위식 기념장, 창경궁, 인정전 아정(민) 소장품등이다.

안동 임청각 3대 종부 허은 여사의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 책에는 왕산 순국 후 일본 순사들이 구미 임은동 임은허씨들을 마구 잡아들이는 등 난리통 가운데 범산 허형의 장남 허민이 갑작스런 죽음을 맞았는데 당시 일본의 간계로 독살되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고 한다. 고종의 어명으로 창경궁 명정전, 명정문의 현판을 쓴 사람이 바로 당대의 명필 범산 허형의 장남 허민이다.

독립운동가 후손의 눈물 : 일창 허발의 손자 허벽씨가 할아버지의 유품을 되찾게 되자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왕산기념관 관계자들과 왕산기념사업회 관계자들은 이 장면을 보면 무릎꿇고 석고대죄를 해야할 것이다.

일창 허발이 남긴 유언서 - <유언 유명지서 정해년 12월 병중> 1947년 정해년에 쓴 것으로 보인다.

후손이 기증한 이 귀중한 독립운동가의 유품을 그동안 왕산기념관에서 보관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다. 독립운동가 기념관이 아니라도 어느 문학관이나 미술관 등에서도 기증받은 서적이나 유품등에 대한 도록이 있어 쉬이 찾을 수 있게 해야 하는것이 당연한데 현 왕산기념관과 기념사업회에서는 그러한 도록이 전혀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다. 

이번 4월 8일 임은동 독립만세 운동에 참가하기 위해서 서울에서 온 허벽<모자 쓰신 분>씨와 대구에서  온 허형식 장군의 조카 허창수씨<태극기 든 분>. (사진ⓒ장호철)

허벽씨는 이번 임은동 독립만세운동 참석 겸 사라졌다는 할아버지의 유품을 찾으러 구미에 온 것이다. 다행히 다시 귀중한 유품을 찾게 되고 식사대접과 숙소제공까지 해준 구미시와 장세용 시장에게 감사의 말씀도 남겼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일창 허발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추진하자는 장기태 위원장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그 일을 진행하는 것을 허락했다. 구미의 역사가 바로 세워지는 작업이 긴 어둠의 세월을 걷어내며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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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한 일요일 오후를 즐기고 있는데 장기태 위원장이 안동의 경북독립기념관으로 가자고 한다. 일창 허발 선생의 기록을 찾으러 안동으로... 김성대 사무국장과 동행하여 경북 독립기념관 학예연구실에서 석주유고등 일창 허발 선생에 대한 관련 자료를 찾고 또한 강윤정 박사의 배려로 석주 이상룡 선생의 아들 동구 이준형 독립운동가의 유고집 '동구유고' 국역판 등 중요한 책자 몇권도 얻어왔다. 이준형 독립운동가의 둘째딸과 왕산 허위의 네째 아들 허국과 만주에서 결혼하는 과정의 내용도 실려있었다. 안동 가는 길에 #영남일보 박진관 기자와 수차례 전화통화로 5월 대구 역사모임 단체에서 구미 왕산기념관 일대를 탐방하고 토론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또 다시 연락 오더니 대구 들릴 수 없겠느냐고? 방산 허훈의 후손 허소 청와대 행정관과 자리가 마련되었다며.... 바삐 대구로 향해 도착하니 박기자와 허 행정관이 반가이 맞아준다. 그간의 진행되는 일에 대해 이야기 보따리를 풀며 섬진강 재첩국집에서 맥주 한잔과 밥 한그릇으로 정담을 이어간다... 신암선열공원을 찾아 일창허발 선생의 묘역 참배 후 비문을 촬영한 후 구미로 .... 좋은 일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며 바삐 보낸 일요일 단상을 짧게 남겨본다. #안동 #독립기념관 #석주 #이상룡 #동구 #이준형 #일창 #허발 #왕산허위 #독립운동가 #구미 #대구 #신암선열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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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3,000 마지기를 팔아 성산 허겸과 왕산 허위의 의병 창의 군자금으로 보태준 방산 허훈의 후손과 만남의 자리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3.1혁명 100주년 독립운동을 예우하는 건 국가의 책무라며 아직 발굴하지 못한 분들은 연구 활동을 확대해서라도 마지막 한 분의 독립운동가까지 찾아내겠다고 약속했

안동 임청각과 구미 왕산가는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서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문재인 대통령이 2월 25일 KBS 1TV에서 방영된 특집에서 '나의 독립 영웅' 석주 이상룡 선생을 소개했다. 왕산과 석주 그리고 육사를 잇는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구미 왕산기념관에 꼭 한번 들러야 할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 구미시민 2019.05.04 11: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왕산 허위선생 기념관의 직원들 방약합편이 어디있냐 물어보니 모르겠다. 관장실 안에 고서들이 많이 있는데 여기에 있을수도 있다. 찾아보아라. 찾다보니 안보여 혹시 사무실에는 없느냐? 물었다. 사무실에는 절대 없다고 하였다. 다음 허벽 어르신 모셔와서 확인해보겠다. 4월 8일 임은동 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날 안보이던 방약합편이 보자기에 싸여서 나타났다. 어디있었냐 물어보니 사무실 캐비넷에 있었다고 하였다. 전에는 분명 사무실에 없다고 하였었는데 이거는 무슨 일인가? 왕산허위기선생기념관에서는 이곳은 왕산허위선생기념관이라 왕산허위선생만을 기념하고 자료들을 전시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곳 왕산허위선생기념관은 도서관이라고 하였다. 독립운동가의 기념관의 주 목적이 독립운동가를 기리고 알리는것이 주 목적이 아니라 도서관 운영이 주 목적인가? 동영상 촬영으로 기록을 남기려 하니 동영상도 찍지 못하게 한다. 왜? 거짓말하는게 들통이 날까 무서운것일까? 왕산허위선생기념관의 전시되어 있는 물품대장기록물도 없다. 누가 와서 훔쳐가도 무엇을 훔쳐갔는지도 모를것이다. 지금까지 순국일에 추모식을 왜 안했냐고 하니 박정희 대통령 탄신제 처럼 지내어야 한다며 누각이 없어서 그동안 못했다고 하였다. 올해 처음으로 왕산허위선생 탄생기념일을 맞아 낙성고유제와 위패 봉안식을 지냈다. 왕산 허위선생의 후손이신 허경성님은 꿔다놓은 보릿자루 취급을 당하였다. 후손이 있는데도 구미시장이 후손인듯 옷을 차려입고 제를 지냈다. 후손이신 허경성 어르신이 할아버지 손자 왔습니다. 술 한잔 받으시죠. 해야하는거 아닐까? 구미시장의 잘못이 아닌 구미시청의 잘못이다. 그리고 왕산허위기념관의 잘못이기도 하다. 시장의 잘못이라면 시 공무원들과 기념관 직원들을 방치 시킨것이 아닐까? 박정희 대통령은 후손이 오지않아서 시장이 그동안 제를 지냈을지 몰라도 후손이 참석을 하면 후손이 직접 제를 지내어야 하는게 아닐까? 유교사상 좋아하는 구미시 공무원 이게 올바른 유교사상이 맞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