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산 후손이자 임청각의 3대 종부 허은 여사 구미 떠나 서간도 망명길
본문 바로가기

역사

왕산 후손이자 임청각의 3대 종부 허은 여사 구미 떠나 서간도 망명길

대한제국 당시 지금의 대법원장, 국무총리직에 올랐던 의병장 왕산(旺山) 허위 선생 집안의 손녀이자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의 손자며느리며 이병화 독립투사의 아내 허은 여사는 1907년 경북 선산군 구미면 임은동에서 아버지 일창 허발과 어머니 영천 이씨 사이에 3남 1녀 중 외동딸로 태어났다. 

1908년 10월 21일 왕산 허위 순국이후 남은 일가들도 일제의 극심한 감시와 학대로 더 이상 고향 구미 임은동에서 살 수 없게 되었다. 남은 허씨 일가들도 도사 댁(허헌)에게 선산을 맡기고 모두 임은동을 떠나 만주로 망명하기로 했다.

 1915년 음력 3월 15일 허은 여사가 8살 그리고 1909년에 태어난 허형식은 6살때 가족들은 고향 구미를 떠나 서간도로 가는 긴 여정에 올랐다. 

육사의 어머니이자 일창 허발의 여동생인 허길(許佶)여사 사진. (사진/뉴스프로)

허은 여사의 부친 일창 허발은 이육사 시인의 외삼촌으로 육사의 정신적 지주였다. 허발 선생은 일제의 극심한 탄압을 피해 구미 임은을 떠난 후 만주에서 종숙부 성산 허겸을 도와 남만주 거주 동포 30만의 민생 교육과 군사 관련 제반 실무를 관장했다고 한다. 일창 허발의 묘소는 대구 신암선열공원 내에 있다

일창 허발의 손자 허벽씨가 구미 왕산 기념관에  허발 선생의 한약의서 '방약합편'을 기증했다고 하는데 그책이 안보인다고 하여 민문연 구미지회 회원들이 기념관을 방문해 각종 기록 서적을 찾아보았으나 발견하지 못했다. 누군가의 손에 있는지 밝혀야 할 부분이다,

일창 허발의 딸인 허은 여사는 이육사와는 고종사촌 사이다.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 중에 이육사가 총살 당한 소식을 듣고는 "그가 바라던 청포입은 손님도 맞이하지 못하고 마흔살 나이에 아깝게 갔다" 라고 슬픔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육사 시 광야에서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라 흠모했던 허형식 장군



1915년에 일가족과 함께 서간도로 망명, 이후 1932년 귀국할 때까지 서로군정서 대원들의 군복을 만들어 배급하고 독립투사들의 온갖 뒷바라지를 다한 공적으로 독립훈장 애족장 서훈을 받았다.

 광복 후 독립투쟁의 후유증이 남아 위로 4남 1여를 저세상으로 먼저 보내야 했고, 아들과 외동딸을 고아원에 보내야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꿋꿋하게 생활고를 이겨가며 자녀와 손자·손녀들을 돌보며 임청각을 지켰다.

괴나리봇짐 지고 야반도주로 고향을 떠나다 (실록소설 허형식 장군 저자 박도 작가)

오늘 경북독립운동기념관 관장 김희곤 안동대 교수가 구미문화예술회관에서 경북과 구미 출신 독립운동가에 대한 강연을 페북 라이브로 보면서 이야기 한 부분인 허은 여사가 회고록에 언급한 부상역터를 찾아갔다. 

김희곤 관장은 북삼역으로 말했는데 사실은 부상역이었다. 일제시대 정식 명칭은 금오산역인데 당시 주민들은 부상역으로 많이 불렀던 모양이다.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부상리에 있던, 단 11년 10개월을 영업하고 사라진 역. 원래 경부선 김천-약목 구간은 구미시를 거치지 않고, 금오산을 넘어가는 노선이었다. 

1915년 임은 허씨 일가들이 구미를 떠나 만주로 간 후 1년이 지나 1916년 11월 1일 금오산역(부상역)은 폐쇄되었다. 약목에서 김천으로 가는 구 국도길이 바로 예전 철도길이었다.

금오산역(부상역)터 앞에는 당시 기차 터널이 남아 있다. (사진 ⓒ 전병택)

100년이 지난 300m 정도 되는 당시 경부선 단선 터널이 김천시 남면 부상리에 남아있다. 부상역에서 허은 여사등 임은 허씨 일족이 이 터널을 통해 만주로 갔다. (사진 ⓒ 전병택)


1916년에 금오산 북쪽으로 우회하는 신선을 완공하여 노선을 그쪽으로 돌렸고, 금오산을 지나는 노선은 폐선시켰다. 이 때문에 금오산역은 생긴지 11년 10개월만에 사라지고, 이 때부터 경부선은 구미면을 거치게 되었다. 대신역, 아포역, 구미역은 이때 개업한 역이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근대화과정을 거치면서 까맣게 잊혀졌던 옛 경부선철도 남면 부상리 구간의 금오산터널(일명 부상터널)이 원형 그대로 100년만에 발견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천신문)

임은동에서 더 가깝고 평야 지대인 약목역으로 가지 않고 오태, 북삼을 지나 금오산 자락을 통해 부상역으로 간것은 당시 일제의 감시가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알게 해 준다. (김천 남면 부상성당 근처에 가면 당시 경부선 철도 부상터널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1990년 석주 이상룡 선생의 유해 봉환 당시 허은 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