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소설 허형식 장군의 저자 박도 작가의 장편소설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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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슈

실록소설 허형식 장군의 저자 박도 작가의 장편소설 『용서』


 분류--문학(소설)  용서

 

박도 지음푸른사상 소설선 21146×210×18 mm328

15,500ISBN 979-11-308-1371-4 03810 | 2018.9.28


도서 소개

지난 얼룩에 대한 참회의 소설

박도 작가의 장편소설 용서<푸른사상 소설선 21>로 출간되었다. 저자는 자신이 살아온 지난 삶을 참회하면서, 용서를 잊고 사는 사람들에게 인생에 대한 깊은 이해와 용서하는 삶의 태도를 소설 용서를 통해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목차

헌시 : 용서…… 라는 씨앗 / 홍일선

프롤로그남대문시장

브로드웨이 32번가

로테르담에서 온 엽서

목 자른 워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추도 예배

영혼의 대화

지울 수 없는 이미지

한라산의 철쭉

맥아더기념관

백두산 해돋이

고백

이민 생활

신원(伸寃)

합장

에필로그안국동 로터리

 

후기 : 눈물로 쓴 글

 저자 소개

박 도

 1945년 경북 구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30여 년 교단생활을 마무리한 뒤 강원도 원주에서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한국작가회의 회원이다. 장편소설로 사람은 누군가를 그리며 산다』 『약속』 『허형식 장군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비어 있는 자리』 『일본기행』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 역사유적 답사기 항일유적답사기』 『누가 이 나라를 지켰을까』 『영웅 안중근등을 펴냈다. 이 밖에도 사진집으로 지울 수 없는 이미지 1·2·3』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 장면』 『사진으로 엮은 한국독립운동사』 『개화기와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미군정 3년사등을 엮었다.

출판사 리뷰

30여 년의 교단생활을 마무리한 저자가 강원도 산골에서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며 써내려간 장편소설 용서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저자가 지난 삶을 참회하는 마음으로 쓴 소설이다. 가난해서 고등학교를 휴학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던 현을 한없는 따뜻함으로 감싸준 친구 장지수와의 고교 시절과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그 친구를 잊지 않고 머나먼 미국까지 찾아가는 현재를 함께 보여주는 글의 구성과 특히 영혼과 대화를 나누는 설정은 소설을 더욱 흥미롭게 한다. 현과 지수의 우정의 궤적에 4·3의 비극, 한국전쟁, 4·195·16 등 굴곡진 한국 현대사가 교차되며 이 소설의 주제인 참회와 용서의 의미가 개인과 가족의 차원을 넘어 민족 전체의 문제로 확대된다. 자전적 이야기를 토대로 한 이 작품을 통해 저자는 인생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을 바탕으로 용서의 참된 의미를 일깨워주고 있다.

후기 중에서

나는 죄인이다. 돌이켜보면 내 젊은 날은 인생에 대한 깊은 이해와 바른 삶이 뭔지도 모른 채 무명 무지한 탐욕의 세월을 살아온 느낌이다. 하지만 그 누구나 한 번만 사는 인생으로 그 얼룩을 쉽사리 지울 수 없다. 이제 남은 인생은 그 얼룩에 대한 참회의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중략)

이 작품은 내가 교단에서 물러나 강원도 산골로 내려온 뒤 첫 번째로 쓴 장편소설이다. 나는 용기백배하여 오랫동안 이 원고를 곁에 두고 다듬어 다시 세상에 내보낸다. 이 작품에서는 용서에 방점을 찍고, 지난 내 삶을 참회하는 마음으로 자판을 두들겼다. (중략)

독일의 철학자 니체의 말이다.

독자는 저자가 피와 눈물로써 쓴 글만을 좋아한다.”

나는 이 작품을 구상하고, 취재하고, 집필하는 동안 내내 행복했다. 아울러 이 작품을 쓰고 가다듬는 동안 나이에 걸맞지 않게 여러 차례 눈물을 쏟았다. 장지수, 그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기 때문이다. 그는 고교 시절 가난한 친구를 감싸주었던, 그야말로 목숨이 아깝지 않은 문경지우(刎頸之友). 하지만 나는 이승에서 그에게 빚만 잔뜩 졌다. 그래서 이 작품은 그의 영혼 앞에 생전의 빚을 갚는 헌사다.

 

책 속으로

그날 오후 돌아오려는데 지수가 신발장에서 워커를 한 켤레 꺼냈다. 그 워커는 약간 낡은 것으로 목이 뭉텅 잘려 있었다.

너 가져다가 신어.”

니 와 이카노.”

옷도, 신발도 무척 귀하던 시절이었다. 군부대 철조망 밖으로 흘러나오는 군복이나 워커는 그대로 입거나 신을 수 없었다. 그래서 군복은 검정 물을 들였고, 워커는 목을 뭉텅 잘라 신었다. 서울 아이들은 그 시절 목 자른 워커를 신고 다니는 게 유행이었다. 신문 배달원들도 대부분 목 자른 워커를 신고 다녔다.

지난번 만났을 때 네가 고무신을 신은 채 절름거린다는 얘기를 하니까 어머니가 남대문시장 헌 구둣가게에서 구해주신 거다.”

사실 현은 그 워커를 몹시 신고 싶었다. 배달 초기 고무신을 신고 다니자 발뒤꿈치에 물집이 생겨나 가래톳이 부었다. 그래서 절름거리던 것을 지수가 본 모양이었다. 지수가 준 워커를 신자 조금 헐렁했지만 끈을 꽉 조이자 생각보다 훨씬 가볍고 가뿐했다. (82)

내 머리숱에 어느새 흰 머리카락이 더 많아졌다. “청춘은 희망에 살고 노년은 추억에 산다고 하더니, 나이가 들수록 지난날의 추억들이 더욱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그러면서 살아생전에 꼭 만나고 싶은 이들의 얼굴들이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떠오른다. 1 때 짝 장지수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비비안 리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잉그리드 버그만을 무척 좋아했다. 그는 쉬는 시간이나 수업 시간에 틈틈이 노트에다가 그 배우들의 캐리커처를 그리면서 시골 사람인 나에게 애써 그들의 얘기를 들려줬다. 1975년 내가 모교 교단에 서 있을 때,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그가 불쑥 엽서를 보낸 뒤 여태 더 이상 소식을 모른 채 지내고 있다. ……그가 보고 싶다. 죽기 전에 그를 꼭 만나서 부둥켜안고 포옹하고 싶다. 그리고 그의 손을 잡고 이제 흔적도 없는 모교 옛터 수송동 골목을 거닐며 지난 추억을 얘기하고 싶다. 그는 나에게 포숙(鮑叔)과 같은 친구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94~95)

하지만 맹목적인 용서는 곤란합니다. 그 용서의 대전제는 가해자의 참회입니다. 가해자가 먼저 회개해야 진정한 용서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용서는 참회한 자에 뒤따르는 화답이지요. ‘정의가 없는 용서’ ‘회개하지 않은 용서’ ‘대가 없는 용서는 값싼 용서로 잘못이 계속 되풀이될 수도, 더 큰 재앙을 낳을 수 있습니다.

”“용서란 어려운 화두로군요. 그렇다고 상대의 잘못을 용서치 않고 마음속에 쌓인 원한으로 스스로 불행해진다면 오히려 상대에게 지는 게 아닐까요?” (189~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