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시인 이육사가 '백마타고 오는 초인' 이라고 흠모했던 허형식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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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민족시인 이육사가 '백마타고 오는 초인' 이라고 흠모했던 허형식 장군

13도 연합 의병부대 총대장 왕산 허위 가문, 안중근 의사 가문, 석주 이상룡 선생 가문, 우당 이회영 선생 가문, 일송 김동삼 선생 가문이 '대한민국 대표적 ‘5대 항일가문’ 으로 손꼽힌다. 

평생 구국의 일념을 견지하고 항일 투쟁으로 일관했던 위대한 삶을 산 항일 의병장 왕산 허위

경북 구미 임은동 소재 13도 의병 총대장 순국의사 왕산 허위 선생의 묘비 (사진 ⓒ전병택)

구미시 임은동 소재 왕산 허위 선생 묘소  (사진 ⓒ전병택)


광야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사진 허형식 장군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의 포문을 연 의병전쟁에서 최고봉을 장식한 인물인 왕산(旺山) 허위(許蔿)선생은 구미가 낳은 항일의병장이다

왕산 허위 선생의 큰형 허훈은 당시 논 3천마지기(60만평)를 팔아 독립군자금으로 지원했고 의병장으로 참전했다. 

허위 선생의 의병정신과 순국정신은 박상진·안중근 의사 등으로 계승되었으며 상해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과 왕산 허위는 사돈 사이이기도 하다.

이번 광복 73주년 광복절에 건국훈장 애족장 을 받은 석주 이상룡 선생의 손자며느리 허은 여사는 왕산 허위 선생의 재종손녀이다.

'광야'를 쓴 민족시인 이육사(이원록)은 왕산 허위 선생의 사촌 허형의 딸인 허길의 아들이다.

이육사가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라고 흠모했던 허형식 장군은 왕산 허위 선생의 사촌 허필의 아들이다. 

이렇게 구미에는 대한민국 5대 독립운동가 가문중 한곳인 왕산 허위 선생 가문이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까? 

구미에는 대한민국 5대 독립운동가 가문중 한곳인 왕산 허위선생 가문이 있는 반면 그 당시 일본왕에 충성 혈서를 쓰고 일본군 장교가 된 박정희가 있기 때문에 구미에서의 이 위대한 독립운동가 가문이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했을것이다.

허형식 장군은 1909년 경북 선산군 구미면 임은동에서 태어났고 바로 옆 동네 구미면 상모동에서 1917년에 박정희가 태어났다. 일본 왕에게 혈서로 충성을 맹세하고 일본 육사에 만주군 장교가 된 박정희와, 1930년 5월 1일 중국 하얼빈 일본총영사관을 공격한 독립군 허형식 장군.


의병과 독립군 활동에 허씨 집안은 희생됐다. 후손들은 불행하게도 낯선 이국땅으로 흩어졌으며 허형식 장군은 변변한 비석하나도 없다. 7월 14일 표창원 의원의 대한민국과 구미 100년의 역사 구미 토크콘서트에서 더불어민주당 장세용 구미시장이 항일 독립투사 허형식 장군 기마동상을 세우겠다는 말을 했다. 

반면 왕산 허위 집안 임은동 철길 건너 상모동에는 박정희의 대형 동상이 서있고 박정희 생가가 있고 딸 박근혜가 대통령 직에 있던 시기에 집행한 총 12만 평 규모의 ‘박정희 타운’ 새마을 테마공원에 1400억 예산 (구미 시 872억 원, 국비 373억 원, 도비 199억 원) 을 집행했다. 여기에다가 200억짜리 박정희 유물관을 짓고 있다. 



정운현 국무총리 비서실장이 5대 항일운동 가문의 투쟁과 삶을 강의하면서 왕산 허위의 사촌인 허형 집안에서 대표적인 항일 투쟁 인물로 꼽히는 허형식 장군과 이육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收藏在哈尔滨烈士纪念馆中 许亨植用过的驳壳枪 眼镜、马鞍

하얼빈 동북열사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허형식 장군의 20발 모제르 권총과 안경, 말안장

동북항일연군 조직에서도 허형식 장군은 3로군 영장 총참모장이다. 제1영의 영장은 김일성, 제3영의 영장은 바로 허형식이다. 허형식 장군 아래의 정치담당 부영장이 바로 김책인데 김책은 북한에서조차 김책시라는 지명으로 만들 만큼 유명한 인물이다. 그 김책이 허형식 휘하에 있었다.  


허형식과 김일성은 대등한 위치에 있었다. 역사학자(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는 만일 그때 허형식 장군이 북만주에서 희생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북녘 아니면 남녘에서 정권을 잡았거나 통일정부를 세웠을 거라고 높이 평가했다. (사진/ ⓒ윤태옥)

민족시인 이육사가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라고 흠모했던 허형식 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려고 시간당 30mm가 넘는 폭우를 뚫고 박도 작가 선생님을 만나 뵈러 구미에서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 회원 6명이 원주까지 찾아 갔다.

박도선생의 글방은 원주 치악산 아래 자리잡고 있다. 선생은 유년시절에는 금오산을 보고 자랐으며 청장년 시절엔 북한산 자락에 자리잡고 살았으며 10여년전 집필에 열중하면서 원주 치악산을 보며 살고 계시다고 한다. (사진 ⓒ전병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