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 한 가운데 구미 금오산 채미정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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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 한 가운데 구미 금오산 채미정을 찾아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불볕더위를 피해 찾은 금오산 채미정 ...

채미정은 고려에서 조선의 왕조 교체기에 두 왕조를 섬기지 않고 금오산 아래 은거한 야은 길재(1353~1419)의 충절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해 영조 44년(1768년)에 금오산 아래 건립한 정자이다.

채미정 입구

교과서에도 실렸던 야은 길재의 회고가

채미정으로 들어가는 다리

채미정

야은 길재가 후학들을 양성하던 구인제,  오늘은 구인제에서 바라본 금오산 정상을 찍어보았다. 

극심한 가뭄에도 채미정 옆 개천엔 차가운 물이 조금 흐르고 있다.

금오산 등산로 올라가는 소나무 숲길

금오산 호텔 앞 출렁 다리

금오산 호텔 앞 약수터 공간....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 지하수 물맛은 구미 최고인듯하다. 추억이 가득한 장소...

금오산 호텔내에 있는 프로포즈 다리라고 한다.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계곡물에 피래미들이 보인다


금오산 계곡 중간에서 구미시가지를 내려다 보며 한컷

금오산 케이블카 타는곳 3층 자그만한 공간에 경북 숲 연구소가 있다. 숲 해설사 분이 나눠 준 냉커피 한잔 ~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시는분들... 손을 흔들어 주시네요  

금오산 등산로가 많이 정비되어 있다.

금오산성에서 정상을 보며 한컷

계곡엔 물이 완전히 말라버렸다. 

금오산 메타세콰이어 길

그냥 차를 타고 지나치는 사람들이 간혹 박정희 동상이라고 착각해서 글을 올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금오산 저수지 입구에 있는 이 동상은 애국지사 박희광선생을 기리는 동상이다.

▶박희광 선생의 항일 독립 투쟁사

구미시 봉곡동에서 태어난 박희광 선생은 1908년 8세때 부친을 따라 만주로 들어가 1916년 3월, 청원현 남성자 학교를 졸업한 후인 18대 때, 일제를 토벌하기 위해 상해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지휘하는 독립 군사단체인 통의부 5중대에 자진 입대했다. 이어 6개월간의 군사 훈련을 마친 후 특공대원으로 편입, 항일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박희광 선생은 특히 김명봉, 김광추, 김병현과 함께 일본군 공격작전에 참가했다. 이들 특공대원들이 가장 먼저 겨냥한 대상인물은 남만주 일대에서 악명 높았던 일제의 앞잡이 최정규와 일제의 첩자 정갑주였다. 결국 1924년 6월 1일, 정갑주와 가족을 몰살했고, 이어 1964년6월 7일에는 최정규의 집안을 초토화시켰다.


이어 1924년 7월 22일에는 봉천의 일본 총영사관에 들어가 폭탄을 투척했으나 실패했다. 이에앞서 박희광 선생 등은 이등방문의 수양녀를 대련에서 암살하려고 했고, 일진회 회장 이용구를 봉천에서 암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희광 선생 등은 1924년 7월 22일, 일본 총영사관에 폭탄을 투척한 그날 저녁 일본의 고급 요정인 금정관에 들러 군자금 3백원을 징수해 나오다가 일경에 발각돼 총격전으을 벌였고, 이 와중에 김광추 소대장은 순국했다. 또 박희광 선생은 권총으로 응사하면서 맞섰으나 결국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이후 혹독한 고문에도 불구하고 투사다운 기백을 보인 박 선생은 관동청 지방법원 1심에서 사형을 선고 받고 상고해 고등법원 2심에서 무기징역을 언도받아 중국 뤼순 형무소에서 복역했다.


박희광 선생이 출옥한 것은 20년간의 옥고를 치룬 1943년 3월 23일, 그의 나이 43세였다, 결국 그는 조국 독립을 위해 옥중에서 청춘을 불살랐던 것이다.

흙길이 있으면 맨발로 걸어보는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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