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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슈

3.1절 구미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 이용수 할머니 참석

올해 3.199주년을 맞아 경북 구미지역의 500여 시민들이 이용수 할머니를 모시고 구미 역후 광장에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를 기리는 '평화의 소녀상'을 세웠다.

대구경북에서 9번째로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은 특히 청소년 주도로 건립이 추진됐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지난해 9월 구미 청소년 YMCA 연합회는 성명을 통해 일본군 성노에 피해자 문제를 알리고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받기 위해 구미에 평화의 소녀상 건립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이에 화답하며 구미 YMCA, 구미 참여연대, 구미 더불어 민주당 청년당원, 구미지역 맘 카페등 지역 시민단체가 적극 동참하면서 기관단체나 기업후원 없이 100% 시민들의 자발적인 동참으로 구미지역 청소년들이 이끈 평화의 소녀상이 마침내 건립되어 많은 시민들의 참여 속에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구미 시니어클럽 사랑고리 합창단이 '꽃반지끼고'와 사노라면 이런 날도 왔다며 '사노라면'을 같이 합창하며 시작되었다. 그리고 구미 현일고 뮤지컬 동아리 ‘페르소나’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 할머니들을 소재로 한 ‘발자국’을 공연하였다.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 구미역후 광장을 가득 메운 구미 시민들

구미 현일고 뮤지컬 동아리 ‘페르소나의 창작극 ‘발자국’ 공연

구미 현일고 뮤지컬 동아리 ‘페르소나'의 창작극 ‘발자국’ 공연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91)도 제막식에 참석해 소녀상 건립을 주도한 구미 청소년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면서 이용수 할머니는 “여러 학생 여러분이 모금을 해서 소녀상을 세운 거, 너무너무 감사하다. 이렇게 일본군 성노예 피해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나와준 여러분들도 너무 고맙다”고 인사말을 전하면서 박근혜 정부 당시 밀실 야합에 의한 합의는 무효이며 일본의 진정한 사과와 배상을 거듭 촉구했으며 박근혜는 자신이 저지른 죄과로 결국 벌을 받고 있다고 거듭 강조하였다. 

이용수 할머니는 “어제 너무 비도 오고 추워서 사실 오늘 오지 않으려고 했다”며 “하지만 대구에서 구미, 멀지도 않은 데 가봐야겠다. 그분들은 봐야겠다. 내가 14살에 일본군에 끌려갔다 공장에는 데리고 가지 않고 군인에게 데리고 가서 만행을 저질렀다. 그 사죄를 받아야하고 우리가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알리겠다는 마음으로, 제가 있다는 것도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왔다. 아직 해결된 게 없다. 일본이 사죄하도록 학생 여러분과 시민 여러분과 함께 활동하겠다”고 전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본이 꼭 사죄를 하고 법적인 배상을 받도록 하겠다. 내 나이가 이제 91살이다, 여러분과 같이 활동하기 딱 좋은 나이다 라며 여러분과 같이하겠다"고 강조하자 참석한 많은 구미시민들도 박수로 응답했다.

이용수 할머니가 연설을 마치고 난 후 구미시민이 안아주는 장면 곳곳에 눈물 훔치는 시민들 모습이 보인다.


구미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을 마친 후 소녀상의 두손을 잡아주는 이용수 할머니, 구미 평화의 소녀상은 이용수 할머니를 모델로한것이다.

이용수 할머니의 소녀시절의 모습을 재현한 소녀상을 어루만지며 잠시 회한에 잠긴 이용수 할머니

구미 평화의 소녀상 목에 꽃 화환을 걸어 주는 이용수 할머니

구미 평화의 소녀상 머리에 모자를 씌어주는 이용수 할머니

구미 평화의 소녀상에 목도리를 채워주는 이용수 할머니

평화의 소녀상을 다시 어루만져 보시는 이용수 할머니

구미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주도한 구미지역 청소년들의 평화의 소녀상 주위에서 기념촬영 


구미 현일고 뮤지컬 동아리 ‘페르소나' 소속 학생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나대활 구미YMCA 사무총장(건립추진위 집행위원장)은 구미 평화의 소녀상 건립에 학생들 힘이 특히 컸다고 했다. 일본 기업 투자를 많이 받고, 일본 오츠시와 국제자매결연을 맺고 20여 년간 교류하고 있는 구미시는 소녀상 건립에 적극 나서지 않았으며 구미역후 광장에 소녀상을 세우는것도 어려움이 있었으나 남유진 전 시장이 지방선거에 도지사 출마위해 사퇴함으로서 그나마 큰 어려움과 반발없이 세워지게 되었다.

구미 평화의 소녀상은 대구 경북에서 9번째로 건립되는 소녀상이다. 구미 소녀상 건립으로 이제 대구 중구 2.28공원 앞, 남구 대구여상 내 소공원, 경북 상주시 왕산공원, 안동시 웅부공원, 포항시 환호공원, 영천시 시립도서관, 경산시 대구대 경산캠퍼스 학생회관 앞, 군위군 등 대구. 경북에는 모두 9개의 소녀상이 세워지게되었다. 

마지막 문제는 유지관리 문제다. 시민들은 소녀상 관리는 구미시청에서 하는 걸로 되어있으나 구미시 행정을 믿을수가 없다면서 민간에서 관심을 갖고 관리를 해야 하는 것과 청소년들 차원에서 관리하는 문제도 고려중이라고는 이야기도 들린다.

제막식 행사 후 구미 소녀상이 조용히 광장 한켠에서 자리잡고 있는 모습. 간혹 지나가는 사람들이 "언제 생겼지?" "구미에도 소녀상이 있네" 라고 하면서 사진을 찍어가는 모습이 간간히 눈에 띈다. 구미를 방문하거나 금오산 주변을 찾는 분들도 구미역후 광장의 소녀상을 살펴봐주고 SNS로 널리 알려주기 바라며 오늘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 소식을 마무리 한다.

어제 삼일절이었습니다. 삼일문고의 이름은 중첩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삼일운동의 정신도 담고 있기에 창립기념일보다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날입니다. 휴일로 서점업무가 바쁘고 직원 휴무관계로 의미있었던 구미역 소녀상 제막식을 못 가본 것이 아쉬웠습니다. 아쉬워 퇴근 후 밤 늦게 소녀상을 만나고 왔습니다. ㆍ 구미 평화의 소녀상은 구미 현일고 역사동아리와 구미 청소년 YMCA 등 지역 청소년들이 주축이 되어 시민 모금으로 건립이 되었습니다.  기부금을 내면서도 모금 성공에 의구심을 가졌기에 건립된 소녀상을 보는데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2016년부터 노력한 지역 청소년들과 화답을 해 준 시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ㆍ 좀 늦었지만 독립운동과 관계된 책 하나를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소개할 책은 2018년1월에 출간된 <중국에서 만나는 한국독립운동사>입니다. 중국 곳곳에 있는 조선인들의 독립투쟁 현장을 2015~17년 2년여 동안 11차례 갔던 답사여행의 기록을 종합한 책입니다. ㆍ 이 책에는 이육사가 고문치사를 당했던 베이징의 현장, 의열단의 목숨 건 거사가 명멸했던 상하이 대로들, 아리랑의 김산이 혁명의 광풍에 휩쓸렸던 피눈물의 광저우, 영화 밀정에도 나오는 김원봉의 조선의용군이 중국 공산당 팔로군과 합작으로 일본군과 치열하게 전투를 했던 타이항산 등등 담겨져 있는데 가장 주목하는 인물은 바로 삼일문고 첫 인물 전시관의 주인공이었고 이육사가 광야에서 노래한 '백마를 타고 온 초인'의 실제 모델인 구미 출신 독립운동가 허형식 장군입니다. ㆍ 그는 1930년대 결성된 조선인 독립투사와 중국공산당이 만든 동북항일연군의 핵심 간부로 1940년 김책, 김일성, 최용건 등 모두 러시아로 피난갈 때 끝까지 북만주에 남아 투쟁하였고 1942년 8월 치열한 전투 끝에 전사하였습니다. 마지막 단원에서 그를 주연으로 세우고 김일성과 박정희를 조연으로 놓은 것에 놀라면서도 반가웠습니다. 본문을 짧게 소개해보겠습니다. ㆍ 본문에서- 우리가 받은 교육에서의 독립운동사엔  3.1운동과  유관순만 부각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운동의 시작만 많이 다루고  1945 년에는 정작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주목해서 쓰지 않았다. . 우리나라 독립운동사가 변형이나 왜곡이 된 이유는 분단과 체제경쟁, 그리고 독재를 위한 탄압때문이었다. 우리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자의 독립운동을 역사에서 배제했고, 북한은 김일성 유일체제만 강조하며 김일성 이외의 독립운동자를 왜소하게 만들었다. ㆍ 일제가 패망하고 광복이 될 때,  조선의용군이 옌안에  700 명,  충칭에  임시정부 요인들과 가족까지 합쳐서  800여 명이 있었다 .  조선 독립운동은 중국을 무대로 상당수가 펼쳐졌다.  나는 이 역사가 현대의 우리에게도 시사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ㆍ 허형식은 뒤늦게 한 사람 한 사람의 기억에 되살아나고 있다. 그의 안타까운 죽음은 위대한 죽음으로 전화되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허형식이 살아남았으면 김일성을 대체하는 인물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역사에 부질없는 가정을 세울 필요는 없다. 허형식과 같은 곳에서 태어난 박정희와 굳이 대비해서만 볼 필요도 없다. 그러나 역사를 흘러간 시간에 대한 반성과 반추라고 한다면 허형식은 그 옆에 김일성과 박정희를 나란히 세워두어야 제대로 조망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ㆍ 허형식이 살아나서 오늘의 이 형국을 본다면 무어라 말할 것인가. 김일성의 권력과 숙청에 대해, 박정희의 친일과 독재 그리고 두 거물의 권력 세습과 그 결과에 대해 과연 무엇이라 말을 할 것인가. 그리고 자신의 처참한 죽음에 대해서는 무엇이라 말할 것인가. ㆍ 나는 마지막 단원에서나마 허형식을 주연으로 세우고 김일성과 박정희를 조연으로 놓는다. 나는 기억하려고 한다, 허형식의 위대한 죽음과, 수많은 사람을 고통에 빠뜨린 김일성과 박정희의 권력은 재평가 받아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허형식의 가치이고 허형식의 역사가 아닐까. 20세기 전반의 독립운동사를 찾아다녔는데 그 끝이 2017년의 김정은과 박근혜에 직접 연결돼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ㆍ #삼일절 허형식 장군을 아직 추모 할 수 없고 하지 않는 현실이 #미군정3년사와 #한국전쟁 사진전을 준비하며 이해가 되었읍니다. 다음주 토요일 오후3시 박도 저자님의 강연을 앞두고 지금 #삼일문고 2층 갤러리에서 전시되고 있는 사진전 내용 일부를 조금씩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사람과 책을 잇다, 삼일문고(@samilbooks)님의 공유 게시물님,


아쉬운 소식은 삼일절을 맞아 홍대앞 '평화의 소녀상' 설치는 홍익대측의 강경한 반대로 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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